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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권상우 캐릭터 돋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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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권상우(27)는 하얀 점토 같다. 우선 얼굴이 유백색이다. 잡티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를 만난 지난 3일 밤 서울 압구정동의 한 카페, 연한 실내 조명을 받으니 흰색이 더 도드라진다.

점토는 미완성이다. 아직 고정된 모양새가 없다는 의미다. 도공(陶工)의 손길에 따라 형태가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배우에겐 물론 감독이 도공이다. 7일 개봉하는 '동갑내기 과외하기'(감독 김경형)는 도공과 점토가 제대로 만난 경우다.

권상우는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배역과 썩 잘 어울린다. 전반적으로 오버하는 인물인데도 거슬리는 부분이 별로 없다. 오히려 귀엽다는 느낌을 준다. 배우로선 큰 행운이다.

그도 1백% 동의한다.

"이번 영화로 완전히 자신감을 찾았어요. 제가 매력적으로 비치는 역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제게 어울리는 시나리오를 고르는 선구안을 키운 게 가장 큰 소득입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그의 첫 주연작이다. 무협 팬터지 '화산고'(2001년)에서 손바닥 힘(掌力)으로 찻잎을 공중에 날렸던 송학림, 청춘 질주극 '일단 뛰어'에서 나이 많은 '언니'들에게 몸을 파는 우섭으로 관객과 만난 그가 세번째 작품에서 주연을 거머쥔 것이다. 성장 속도가 꽤나 빠른 편이다.

권상우는 새 영화에서 부잣집 아들 지훈을 맡았다. 모든 출연작에서 검정 교복을 입은 고교생으로 나오니 우연치곤 대단하다. 지훈은 한마디로 못말리는 학생이다.

주머니에 용돈은 넘쳐나지만 학업에는 전혀 뜻이 없다. BMW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며 틈만 나면 주먹을 휘두른다. 덕분에 남들보다 학교를 2년이나 더 다니고 있다. 그의 지상 목표는 고교 졸업이다. 하기 싫은 공부지만 부모가 정해준 과외 교사는 거부할 수 없다. 왜? 과외마저 안하면 아버지가 신용카드를 앗아가기 때문이다.

그런 지훈이 호적수를 만난다. 오 마이 갓! 그와 스물한살 동갑인 여대생 선생님 수완(김하늘)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과외로 등록금을 벌어야만 하는 치킨집 딸 수완은 처음엔 선생님을 소 닭보듯 무시하던 제자를 '인간'으로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새콤달콤한 사랑도 빠질 수 없다.

2001년 화제작 '엽기적인 그녀'처럼 인터넷 연재물을 극화한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빠른 속도감과 톡톡 튀는 대사가 무기다. 장년들은 "뭐 저런 애들이 다 있어. 코미디라도 너무하잖아"라고 못마땅해 할 수 있다. 그러나 등장 인물의 경쾌한 성격이 잘 표현됐고, 웃음을 유발하려는 상황 설정도 비교적 자연스러워 젊은층에 호소력이 클 듯하다.

특히 권상우는 물 만난 고기 같다. 툭툭 내뱉는 불량스런 말투, 건들거리는 몸짓 등이 지훈의 캐릭터를 멋지게 살려냈다. 게다가 싸움 실력은 '캡짱'. 담배 꽁초를 날려 달려드는 애들을 간단히 제압한다. 가끔씩 서비스로 그의 탄탄한 상체도 보여준다.

그는 이번에 멜로.액션.코미디를 두루 소화했다. 배역이 몸에 붙으니 즉흥 대사, 즉흥 연기도 많이 반영됐다고 즐거워했다. "생쇼를 해라""내 아를 낳아 도" 등은 그가 순간적으로 던진 대사라고 한다.

권상우는 현재 방영 중인 주말 드라마 '태양 속으로'에서도 주인공이다. 의리를 생명처럼 생각하는 해군장교다. 그런데 드라마의 그는 다소 겉도는 인상이다. 대사가 안 들린다는 불평도 있다.

"맞아요. 그렇다고 선천적으로 혀가 짧은 건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습관이 잘못된 거죠. 드라마가 끝나면 발성 훈련에 주력할 겁니다."

자랑할 건 자랑하고, 인정할 건 인정하는 젊은 기운이 전해졌다. 앞으로 계속 영화를 할 건데 기가 죽을 필요는 없다는 태도다.

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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