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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가다] 지능형 마이크로시스템 개발 사업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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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과학기술부의 '21세기 프런티어 사업'이 닻을 올린 지 3년이 됐다. 10년 뒤에 먹고 살 과학기술과 첨단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2000년에 시작한 사업이다.

사업단의 수도 19개에 이른다. 사업단마다 연간 1백억원 정도씩의 연구비를 10년간 지원하는 파격적인 조건이다. 사업단 하나의 예산이 작은 연구소 규모다.

지금 이들은 우리나라 연구개발의 새로운 모델이 되고 있다. 연구 성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우수 사업단의 연구현장을 찾아 특장점을 살펴본다.(편집자)

▶(이탈리아)P 다리오 교수=실험용 돼지를 30~40㎏에서 70~80㎏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성인의 대장과 비슷한 환경을 맞추기 위해서다.

▶(연세대)송시영 교수=돼지의 크기는 문제가 안된다. 현재의 내시경도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동일한 것을 쓴다.이탈리아에서 개발하고 있는 내시경의 체내 이동 부분에 문제가 있다.

▶(홍릉)박종오 단장=(다리오 교수에게)내시경 이동 방법의 개선이 필요하다. 독일 튀빙겐의대에서 시체로 실험하는 것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5일 오후 6시 서울 홍릉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첨단연구동에 자리잡은 지능형 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단 영상회의실. 사업단의 연구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국내외 연구팀과 세지점 국제 영상회의 내용의 일부다.

토론에 참여한 연구팀은 홍릉 사업단, 연세대 의대, 이탈리아 피사의 성안나고등기술원 등 3개팀. 지능형 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단은 과기부의 21세기 프런티어사업단 출범 첫해 선정됐다.

이날 주제는 대장 안을 스스로 움직이며 진단할 수 있는 대장내시경 로봇의 임상시험이었다. 대장내시경 로봇은 지난해 이 사업단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을 완료해 동물 실험을 끝내고, 인체를 대상으로 한 임상을 준비 중인 최첨단 제품.

이런 국제 영상회의는 격주로 열린다. 매번 연구 진행 상황을 서로 점검하고, 미비한 점을 개선해 나가기 위해서다. 연구팀간에 부품의 성능, 규격, 연구진척도 등을 사전에 조율해 진행하지 않으면 프로젝트 자체가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톱니바퀴처럼 딱 맞지 않으면 제품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단이 2010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하고 있는 캡슐형 로봇 내시경과 마이크로PDA 등과 같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첨단 제품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캡슐형 로봇 내시경은 간장약 '우루사' 정도의 크기로 스스로 식도.십이지장.소장.대장 등을 돌아다니며 영상을 촬영해 검진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

제품이 개발되면 수조원대의 세계 내시경 시장을 휩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이크로PDA의 크기는 손목시계 정도. 성능은 말로 입력하고,전화를 걸며, 영상 통신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업단의 연구 과제는 32개다. 이 중 외국 연구진이 맡고 있는 과제는 3개. 과제를 맡고 있는 책임자들의 소속은 국내외 기업이나 대학 등 각양각색이다. 연구 장소도 소속 기관에 있는 자신의 연구실이다.

연구 수준은 국내외에서 최상위 그룹에 속한다는 것이 사업단측의 말이다. 이 모든 과제의 연구력은 두 제품을 개발하는 곳으로 집중되고 있다. 목표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 중간 중간 개발되는 파생 제품은 즉시 상품화로 이어지도록 하고 있다.

지능형 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단의 가장 큰 장점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연구과제를 세계 시장.기술 추세에 즉시 맞춰가는 순발력에 있다. 남이 먼저 개발을 하거나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털어내고 새 기술 쪽으로 눈을 돌린다는 것이다.

사업단장에게 연구팀 선정과 예산 집행권 등 모든 권한을 부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부 연구사업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획기적인 실험이기도 하다.

박종오 단장은 국내 유수의 기업 연구소 두개 팀이 맡고 있던 과제를 지난해 중도 하차시켰다. 10억원 정도를 투자했으나 세계 기술 흐름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대신 세계 어느 연구소도 상용화에 손대지 않은 고성능 배터리와 화면표시장치 관련 과제.연구팀을 공모해 새로 시작했다.

박단장은 "남이 하는 것을 뒤쫓아가서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어 연구과제 정비를 수시로 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에서 사업단장을 전폭적으로 믿고 맡기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사업단의 공용어는 영어다. 전화나 대화.보고.회의 등을 모두 영어로 해 마치 외국의 어느 연구실을 방문한 듯했다. 이는 국제적으로 연구개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채택한 사업단장의 방침이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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