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시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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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졸업「시존」이 되었다. 이맘때면 흔히 듣던 「형설의 공」이란 말을 요새는 이상하게도 잘 쓰지 않는다. 그런 말을 쓰기가 쑥스러워 졌다고 누구나 느끼는 때문인지도 모른다. 공부하는 학생, 연구하는 교수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슬로건」이 나올 정도의 오늘의 대학이니 말이다.
또 그래서 요새는 졸업이 끝이 아니라 학문의 시작이라는 뜻이 강조되고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2세기말 「콜로나」 대학에서 졸업시험합격자는 전교의 교수·학생들 앞에서 강연하여 가르치는 것을 「Commence」라 했다.
여기서 「Commencement」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니까 이 말의 뜻은 가르치기 시작한다는 것이지 배우기 시작한다는 것은 아니다.
옛날 졸업장은 양피지로 돼있었다. 그래서 졸업생이란 대학과정을 마치고, 헐벗은 지성을 감추기 위하여 양피를 얻게 되는 사람이라는 「위트」도 나오게됐다. 요샌 졸업장은 종이로 돼있다. 그러니까 지성의 빈곤을 감추기가 더 어려워진 셈이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좋다. 그래서 등록금으로 부모를 울리고, 도서관보다는 다방과 대폿집 출입이 더 많을망정 대학은 나와야한다. 또 그래야 「출세」하는 경우에 이력에 쓸 수도 있다. 어느 대학이라도 나와야 「출세」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래저래 졸업은 즐거운 것이다. 「지상에 대학처럼 아름다운 곳은 없다』고 「존·메이스필드」가 말했다지만 졸업날의 대학을 볼 때마다 그런 느낌이 짙어진다. 꽃과 명사와, 화려한 부형들의 의상과…정말 아름다운 풍경이다.
내일부터 졸업생들이 부닥쳐야할 여러 가지 험한 사회의 물결을 생각할 때 해마다 졸업날만이라도 화려하게 꾸며나가려는 심정에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요즘에는 뭣이 졸업장의 값을 떨어뜨려놓고 있는지, 그 책임을 학생에게만 물어야할 지 새삼 따지고 싶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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