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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바다는 남빛 주낙배를 묻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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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봄은 먼저 바다에 온다.
지리산 줄기 높은 마루에는 겨울을 아쉬워하는 듯 잔설의 흰 그림자가 수놓여 있지만 남해의 바닷물은 차츰 남빛으로 물들고 있다.
검푸르던 바닷물이 남빛을 띠면 봄은 배목수(선공)들을 앞세우고 부두에 상륙한다.
배목수들이 부둣가에서 주낙배를 묻는다. 콰앙-쾅…자귀가 나무를 무는 소리, 톱질하는 소리, 못박는 망치소리, 대패질소리, 욕지거리, 웃음소리, 각가지 소리가 범벅이 되어 봄을 화음한다.
비단같이 엷은 구름에 가려 햇살은 뜨겁지 않으나 배목수들의 이마에 땀이 솟는다. 벗어제친 무거운 웃저고리는 판잣집 벽에 나란히 걸려 겨울을 전송하고있다. 배목수들이 1년에 한번, 포구에서 만날 때는 철이 아무리 일러도 봄이 된다.
박상섭 목수는 멀리 남해에서 왔다. 겨울동안 지루하게 기다리다 배일이 있다는 김 목수의 편지로 열흘 전에 여천땅에 왔다는 것이다.
주낙배 한척을 묻는 값은 약35만원, 이 가운데 품삯이 10만원쯤. 셋이서 보름이면 너끈히 마친단다. 하루 2천원 벌이는 실히 되어 벌이치고는 괜찮지만 일이 봄에 한때 있다가 뚝 끊어지는게 탈이라했다. 박씨는 『요놈으로 번 돈은 아들학비에 보택거여』하고 희색이 가득하다.
그러나 배목수들에게는 아쉬움도 있다. 박씨는 해마다 주낙배만 묻었다. 『중선을 만들어 봤으면 쓰겠는디』-큰배를 만들어 남해에 띄우는게 소원이라지만 좀처럼 일이 없다는 것이다. 글 김경욱 사진 김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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