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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신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이웃 일본의 신문들은 최근 한국의 긴박한 사태들을 소상하게 보도하고 있다. 북괴 무장특공대사건도 속속 그 속보가 나고있으며「푸에블로」호 납북사건은 조석으로 예외없이 1면의「톱」을 장식한다.
하긴「뉴요크」「런던」「파리」「홍콩」…세계의 신문들이 한국의 동해와 휴전선에 시선을 쏟고 있다. 「원산만 사태」는 이미 세계의 시사용어로 굳어졌다.
『한국의 위기 점고』라는「헤들라인」에 이르면, 새삼 세계사의 미묘한 틈바구니에 끼여있는 우리의 창백한 얼굴을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일본의 신문들이 그처럼 호들갑스럽게 구는 것은 유별난 뜻이 있다. 일본은 어차피 극동의 평화우산을 벗어나서 살수는 없다. 그들의 반응은 외교적인 도의감도 단순한 「저널리즘」도 아니다. 바로 그들의 생존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한국의 하늘에 핵 구름이 덮일 때 일본의 하늘엔 신선한 태양이 빛나고 있겠는가.
일본의 신문을 펴보며 섬뜩한 생각이 드는 것은 이편의 소박한「쇼비니즘」때문만은 아니다. 24일자 일본의 A신문 석간은 2면「풀·페이지」에 북괴의 사진 특집을 싣고 있다. 「메인· 타이틀」은 『긴장하는 북괴』-. 어찌된 일인가. 마치 북괴는 한국의 도발이나 공격을 받았다는 인상이다.
다시 Y신문 25일 조간은 사설에서 그런 의혹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서울 사건은 한국 측의 「게릴라」를 북괴 측의 장교들이라고 말하는 반면, 북괴 측은…(중략)…라고 발표하고 있다.
지금 단계로선 그 진상이 명백하지 않다.』
Y, A, M지 모두 비슷한 논조를 고집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북괴의 평양방송을 인용하며, 딴전을 부린다. 「자유주의」신문의 길은 중용이 정도가 아닌가. 중용의 정도는 흑백의 사이 「회색」이 아니라, 흑은 흑, 백은 백의 정확한 판단 위를 가는 것이다.
그런 「도덕론」보다도 더 다급한 것은 일본의 입장이 아닌가. 한때 소란을 피우던 「삼실연구」의 「테마」가 무엇인가. 북괴가 남침을 했을 때 일본의 전략대비가 아닌가. 일본의 신문을 펴보는 우리의 분노와 고소는 바로 일본인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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