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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은, '독립'과 '고립'은 전혀 다른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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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어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추경예산의 통과로) 경기회복 노력에 중앙은행이 동참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기준금리 인하는 올 들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대 초반으로 낮아져 물가 부담은 줄어든 대신 경기 회복세가 예상보다 미약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에 이어 인도·호주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내리고, 일본의 엔 약세에 대응하는 측면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요 선진국들이 양적완화를 지속하는 마당에 금통위가 나 홀로 고집을 피울 명분이 마땅치 않았다.

 기습적인 금리인하로 한은은 다시 한번 신뢰 상실을 자초했다. 김중수 총재는 지난 3일 “지난해 0.5%포인트 금리인하도 굉장히 큰 것이다. 한국이 기축통화를 쓰는 미국·일본도 아닌데 어디까지 가란 것인가”라며 금리 동결을 강하게 시사한 바 있다. 이에 정치권은 한은을 향해 ‘청개구리’ ‘나무늘보’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동원하며 집요하게 금리인하를 주문했다. 결국 한은은 일주일도 안 돼 스스로 손바닥을 뒤집으며 외부 압력에 굴복한 꼴로 비치게 됐다. 이번 금리인하가 6대1로 통과되면서 금통위 내부에서 ‘선상 반란’이 일어난 게 아니냐는 잡음까지 불거지고 있다.

 그동안 한은은 시장 흐름과 엇박자를 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은은 ‘독립’을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시장과의 ‘고립’을 자초하기 일쑤였다. 중앙은행이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시장의 신뢰를 바탕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1년 후의 금융정책 방향까지 예고하며 시장 심리를 원하는 쪽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예측 가능한 정책을 펴야 경제주체들도 믿고 따라온다. 그런 의미에서 한은이 어디로 튈지 종잡기 어렵다는 시장의 푸념은 한은의 위기를 예고하는 경보음이나 다름없다.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시장에서의 고립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한은은 독립과 고립부터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