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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혈육보다 소중했다.|고모부 잃고 「난중일기」찾은 수훈의 17세… 김영선 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고모부를 고발한 17세 소년은 의분과 가책의 고비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난중일기 수사의 첫 단서를 귀띔한 은천 표구점 점원 김영선(17) 군은 바로 이 사건의 공범 강찬순의 처조카. 강은 공부시켜 주겠다고 김군을 데려다 길러오고 있는 처지. 범행 며칠 전부터 발걸음이 잦아진 주범 유근필의 수상쩍은 언동에 김군의 신경이 곤두섰다.
유는 표구점에 찾아올 때마다 포구작업장에서 일하는 김군을 밖으로 내보내고 강과 소근거렸다.
『내가 1천만원 짜리 1건을 했다』느니 『이순신이 임금에게 보낸문서』라는 등. 김군이 표구점과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는 복덕방주인 박봉춘(72) 노인에게 『큰 일이 난 모양』 이라고 무심결에 흘린 한마디에서 실마리는 풀리기 시작했다.
김군의 얘기를 들은 박 노인은 흥분, 그 길로 집에 달려가 아들 박경웅(30·동래구 온천동189)씨와 상의했다.
그러나 온천 표구점과는 얼굴이 익은 터라 쉽사리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생각다 못한 박씨는 9일 아침 중학 동창인 황규하(29·동래구 명륜동 311)씨와 함께 김군을 모 중국집으로 불러냈다. 김군은 처음엔 고개를 저었다. 김군을 달래기 위해 만일 사실을 알리면 보상금을 나눠준다는 확인서까지 썼다
시종 입을 다문채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던 김군은 그러나『고모부를 잃더라도 국보를 찾기로』 결심이 선 듯 비장한 표정으로 모든 사실을 두 청년에게 털어놨다. 사실을 모두 알아낸 박씨는 그 길로 「택시」를 잡아타고 부산시경으로 달려갔다. 9일 상오11시30분-.
한편 이보다 앞서 부산시경 수사3계 박유수 계장은 그가 잡았던 양산 통도사 보물도난사건(66년10월24일)의 주범 유근필이 징역8월 형을 치르고 지난해 5월에 출감했다는 사실을 알아대고 그의 소재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여기에 날아 들어온 박씨 등의 제보와 꼭 맞아 들어갔다.
작년에 경남 함양 중학 2년을 중퇴한 김군은 가난으로 배움을 더 잇지 못하고 농사일을 돕다가 『일만 잘하면 학교에 보내준다』는 고모부의 말을 듣듬고 약1개월 전에 부산에 왔다.
『이제 속이 후련합니다. 그러나 고모부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고 김군은 소리 없이 울먹이고 있었다. 【부산=곽기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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