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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의 온상 서독막스·프랑크연구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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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학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노벨상」.「막스·프랑크」협회는 이 협회 물리화학연구소의 「만프레드·아이헨」교수가 67년도「노벨」화학상을 받음으로써 이 협회 산하 연구소에 7명의 「노벨」상 수상연구원을 가지게 되었다.
제2차 대전 후 다소 침체된바 있으나 과학 기술의 나라 독일의 최고 연구 기관이 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세기의 과학자「막스·프랑크」·「아인슈타인」·「막스·폰·라우에」·「프리츠·하버」·「오토·한」등이 거쳐간 「막스·프랑크」연구소는 지금도 역시 독일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 또 긍지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현재 이 연구소서「노벨」상 수상자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막스·프랑크」생화학연구소장겸 이 협회총재인「아돌프·부테난트」교수 (당64세)는 1939년 생식「호르몬」의 분리및 성분연구로「노벨」화학상을 받았다.「호르몬」 및 암연구로 세계적인 권위자인「부테난트」교수는 1936년이래 이 연구소 소장직을 맡아 온다.「막스·프랑크」물리학 연구소장겸 이 협회부총재인「베르너·하이젠베르크」교수(당66세)는1932년 새로운 물리학의 체계를 수립한 양자역학의 창시 공로로「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는 1942년 이래 이 연구소장직을 맡아 왔으며 현재는 소립자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1912년이래 「막스·프랑크」 연구소 전신인 「빌헤르」황제화학연구소에서 연구를 하여 온 물리학자이며 화학자인 「오토·한」교수는 지금은 88세의 노령이므로 연구소를 떠났으나 동 협회 명예 회장으로 있다. 그는 ]944년 그가 1938년 중성자에 의한 「우라늄」핵 분열을 발견한 공로로「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이외에 1931년「노벨」의학상을 받은「오토·바르부르크」교수는「막스·프랑크」세포생리학 연구소장으로 있으며 1963년 화학상을 받은 「칼·지글러」교수는「막스·프랑크」우탄연구소장으로 있다.
그리고 67년도 세계생화학총회(동경)참석후 우리 나라를 방문한 바 있는「페오돌·린덴」교수는「막스·프랑크」세포화학연구소장직에 있다. 그는 1964년「노벨」의학상을 받았다. 이번 이 물리화학연구소의 책임 연구원(부장)인「아이헨」교수가 67년도「노벨」화학상을 탐으로써 이 협회는 지난해 7월말 사망한 1938년도「노벨」화학수상자「리처드·쿤」교수에서 잃은「노벨」수상 회원수를 다시 찾았다.
비록 미국국적으로 상을 탔지만 67년도 물리학상을 탄「베테」교수도 독일인이었으며 그가 독일에서 공부를 했고 또한「아이헨」교수의 「노벨」화학상 수상은 독일국민들에게 그들의 찬란했던 자존심을 다시 불러 일으켜주는 것 같다.【뮌스터=문인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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