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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미 의회 영어 연설…북의 '병진정책'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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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현지시간) 미 의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을 하기 위해 하원 본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워싱턴=최승식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8일 “그동안 북한이 도발로 위기를 조성하면, 일정 기간 제재를 하다가 적당히 타협해서 보상을 해주는 잘못된 관행이 반복돼 왔다”며 “그러는 사이 북한의 핵개발 능력은 더욱 고도화되고 불확실성이 계속돼 왔는데, 이제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전 10시30분(현지시간) 존 베이너 미 하원의장의 초청으로 이뤄진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영어 연설에서다. 이어 박 대통령은 “ 북한은 핵보유와 경제발전의 동시 달성이라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북한 지도부는 확실히 깨달아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You cannot have your cake and eat it, too.” 케이크를 갖고 있는 것과 먹는 걸 동시에 할 순 없다는 뜻으로, 꿩 먹고 알 먹을 순 없다는 얘기다. 핵을 보유하면서 주변국의 경제 지원을 받으려는 북한의 ‘병진정책’을 비판한 발언이다.

 30분간 이어진 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북한에 단호한 메시지를 전했다. 박 대통령은 “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견지해 나갈 것”이라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북한의 핵은 절대 용납할 수 없고,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영·유아 등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 상황과 관련 없이 해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뒤 “한반도 프로세스를 유지해 나가면서 비무장지대(DMZ)에 세계평화공원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지지를 확인한 한반도 프로세스 구상을 한·미 동맹이 나가야 할 ‘첫 번째 여정’으로 꼽았다.

 한·미 동맹의 두 번째 여정으론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서울 프로세스)을 들었다. 박 대통령은 “역내 국가의 경제적 역량과 상호의존은 하루가 다르게 증대하고 있으나, 과거사로부터 비롯된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일본을 우회적으로 겨냥한 뒤 “역사에 눈을 감는 자는 미래를 보지 못한다 ”고 역설했다. 그러곤 “이러한 도전들을 극복하기 위해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추진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북한도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이 밝힌 한·미 동맹의 세 번째 여정은 “지구촌의 이웃들이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함께 기여하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특히 60주년을 맞은 한·미 동맹을 ‘21세기 포괄적 전략동맹’이라고 규정했다. 이와 관련, 박 대통령은 “오늘 여러분에게 한·미 동맹의 60년을 웅변하는 한 가족을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며 미국의 모건 가족을 소개해 큰 박수를 받았다. 박 대통령은 “3대가 한국의 안보를 지켜낸 모건 가족은 한·미 동맹 60년의 산증인”이라며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미국인들의 헌신과 우정에 깊은 감사의 박수를 드린다”고 사의를 표했다. 데이비드 모건 중령은 1992년과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주한미군에서 근무했고, 아버지 존 모건은 한국전쟁 당시 미 213야전포병대대 포병중대장으로, 할아버지 워런 모건은 한국전쟁에 해군 예비군 지휘관으로 참전했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원자력협정 개정과 전문직 비자 쿼터 확대에 대한 미 의회의 협조도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 선진적이고 호혜적으로 한·미 원자력협정이 개정된다면 양국의 원자력 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에 더해 미 의회에 계류 중인 한국에 대한 전문직 비자 쿼터 관련 법안이 통과 될 수 있도록 미 의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당부 드린다”고 했다.

 ‘한강의 기적’도 말했다. 박 대통령은 “세계인들은 1953년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의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무역규모 세계 8위의 국가가 된 것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른다”며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은 이것을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성취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한국인들은 독일의 광산에서, 월남의 정글에서, 열사의 중동 사막에서 많은 땀을 흘려야 했다. 저는 자랑스러운 한국 국민들과 함께 또 다른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룰 것”이라고 선언했다.

 박 대통령은 “미국 독립선언서에 새겨진 행복추구권은 대한민국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한·미 양국과 지구촌의 자유와 평화, 미래와 희망을 향한 우정의 합창은 지난 60년간 쉼 없이 울려 퍼졌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란 말로 연설을 맺었다.

 ◆여섯 번째 미 의회 연설=박 대통령의 연설은 한국 대통령으로선 여섯 번째였다. 미 의회 첫 연설자는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그는 1954년에 유창한 영어로 연설을 해 33번의 박수를 받았다. 1989년 노태우 전 대통령도 영어로 연설해 14번 ,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국어로 연설해 20여 차례 박수를 받았다.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어 연설엔 10여 차례의 박수가, 2011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연설엔 45차례의 박수가 터졌다. 박 대통령에겐 6번의 기립박수를 포함해 41번의 박수가 쏟아졌다.

워싱턴=신용호,강태화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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