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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태열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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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모에 강추위가 닥쳤다. 「베르흐얀스크」제 추위라니 얼얼한 정도가 아니다. 동자까지 아리다. 본고장 추위가 영하 70도(C)인 것에 비하면 영하17도쯤으로 호들갑을 떨기엔 좀 멋적다. 그렇다고 움츠러드는 어깨를 별안간 펼 수도 없다. 어느새 어깨는 치켜져 있는 것이다. 이런 날씨에 나들이를 다녀야할 생각을 하면 벌써 귀가 시리다. 차를 잡기도 그렇고, 「버스」를 타재도 그렇다. 귀만 시린 것이 아니라, 발가락에서 달그락 소리가 나는 것 같다. 그나마 시내행차의 경우니 잠시만 견디면 된다. 하다못해 다방에라도 들러 뜨거운 엽차를 청할 수도 있다.
열차를 타야하는 귀성객을 생각하면 이젠 와들와들 떨리기까지 한다. 재채기가 나고, 머리가 띵해지며, 금세 독종의 고뿔이 목덜미를 잡는 기분이다. 「동태열차」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열차가 꽁꽁 얼어붙었다는 의미보다도, 승객이 그쯤 된다는 뜻이 더 원의에 가까울 것이다.
야시의 「우동」국 집 같은 이른바「히터·카」(난방용 기관차)가 겨울철이면 「디젤」 기관차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 다닌다. 그것도 본선에나 배당이 되고, 지선엔 어림도 없다. 그러나 「히터·카」의 입김도 겨우 객차 아홉간을 덥힐 정도라고 한다.
아홉번째 간은 미지근하고 만다. 10번째 이상은 「웃목 열차」다. 「아랫목열거」가 있으니 「웃목」이랄까. 실은 「냉장열차」다. 유리창에 성에가 돋는다. 「오버코트」를 걸치고도 발장구를 쳐야한다. 동동 발을 구르며 천리 길을 달린다. 요즘의 경부선은 적어도 13∼14간이나 된다.
지선에는 「마세크」탄 난로가 엉거주춤 놓여 있다. 시름시름하는 난로 옆에서나 그 더운 기를 쬔다. 그리고는 단념하는 편이 좋다. 공연히 난로 근처에 서성거리다가는 얼굴색까지 달라진다. 마중 나온 사람은 미처 알아보기도 힘들게 여객은 「깜동이」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작년에도 그 오래 전 겨울에도, 그리고 바로 올 겨울 세시에도 20만∼30만 명의 서울 귀생객들은 이런 열차를 타고 고향을 찾아가야 한다. 2등 3등 선로의 여객은 그 보다도 못한 기차를 「썰매」타듯 타야하는 것이다. 경제개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결국은 인간을 위한 계획이다. 철도는 「수전노」의 장사는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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