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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의 테너' 탄생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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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노 파바로티(68).플라시도 도밍고(62).호세 카레라스(57) 등'3대 테너'의 공통점은? 건강 상의 이유로 공연 취소를 밥먹듯 하고 오페라보다는 마이크를 사용하는 콘서트 무대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파바로티는 오는 2005년 칠순 생일에 공식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카레라스도 올시즌 출연하는 오페라가 단 한 편도 없다. 지휘와 오페라단 운영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도 올시즌'발퀴레''파르지팔''팔리아치'등의 주역을 맡은 도밍고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하지만 그도 최근 건강 때문에 공연을 취소하거나 중도에 다른 가수를 투입하는 일이 잦아졌고 오는 2007년 오페라 무대를 떠나겠다고 밝혔다.

1990년대 후반 로베르토 알라냐(40)와 호세 쿠라(40)가 '제 4의 테너'로 혜성처럼 나타났다. 지난해엔 파바로티가 갑작스럽게 공연 취소를 선언한 뉴욕 메트의'토스카'공연에서 살바토레 리치트라(34)가 대타(代打)로 데뷔한 가운데 또 한 명이 차세대 테너 대열에 합류했다. 리카르도 샤이 지휘로 녹음한 로시니 아리아집(데카)으로 올해 칸 클래식 음반상 성악 부문을 석권한 페루 태생의 신예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30)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플로레스는'파바로티의 후계자'는 아니다. 그에게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가 베르디 오페라에 출연한 것은 코믹 오페라'팔스타프'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주특기인 로시니 오페라에선 캐스팅 1순위로 꼽힌다.

그의 오페라 무대 신고식은 1996년 로시니의 고향에서 열린 페사로 페스티벌. 합창단으로 출연 중이었던 그는 주역 가수가 도중 하차하는 순간 무대로 불려나가 로시니의'샤브란의 마틸데'를 말끔하게 마무리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지난해 뉴욕 메트의'세비야의 이발사'에서 알마비바 백작으로 출연한 데 이어 올 시즌 '신데렐라'(런던.샌프란시스코)'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밀라노.로마)'몽유병의 여인''세비야의 이발사'(빈)등에 주역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그에게'21세기의 로시니 테너'라는 표현은 결코 과찬이 아니다. 가냘프면서도 유연하고 맑고도 경쾌한 목소리는 로시니.벨리니.도니체티 등 벨칸토 오페라에 잘 어울린다. 화려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에 비길 만한 이 목소리를 가리켜 이탈리아인들은 '테노레 디 그라치아'(새침데기 테너)라고 부른다.

베르디.푸치니 일색에서 탈피해 17~18세기로 회귀하려는 최근 세계 오페라계의 움직임과 맞물려 플로레스의 주가는 계속 치솟고 있다. 페루 리마에서 민요 가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소년 시절 록밴드 멤버로 활약했고 피아노 바에서 기타 반주로 노래를 불렀다. 페루 국립음악원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팝가수가 꿈이었다.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악원으로 유학한 그는 페루 태생의 테너 에르네스토 팔라치오를 만나 벨칸토 창법을 배웠다. 이탈리아 베르가모에 살고 있으며 인터 밀란 축구팀의 열렬한 팬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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