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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평가 90점만 받으면 OK? 근데 뭐가 이리 복잡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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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내신이 절대평가로 바뀌었다. 학생 수준과 상관없이 석차로 줄을 세우던 과거의 상대평가와 달리 성취도 90% 이상이면 누구나 A등급을 받는 방식이다.

내년엔 고등학교 내신도 절대평가로 전환한다. 지금은 외국어고 등 공부 잘하는 학생이 많은 학교에 다니면 상대적으로 대입에서 내신 불이익을 받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이 사라진다.

이에 따라 학생 선발권이 있는 학교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아질 전망이다. 다시 말해 이런 고교에 가기 위해 중학교 내신이 더 중요해졌다는 말이다.
문제는 지난해 전국 중학교의 절대평가 결과를 들여다보니 학교별 편차가 매우 컸다는 점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봤다.

내신성적에 절대평가(성취평가)가 도입되면서 중학교 교실에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과도한 줄 세우기라는 비판을 받는 상대평가를 없애 학생의 학업 스트레스를 줄여주겠다는 게 절대평가를 도입한 교육부의 의도다. 그러나 최고등급 A를 받는 학생 비율이 학교별로 편차가 큰 것으로 드러나면서 학부모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학교별로 크게 다른 등급 비중이 학교별 학업수준 차이 때문이 아니라 난이도 조절 실패가 아니냐는 의구심 탓이다.

일부에선 “이 성적이 특목고 등 고교 입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한데 학교 측의 난이도 조절 실패를 결국 학생이 떠안는 게 아니냐”는 문제제기까지 한다.

절대평가를 한 지난해 중학교 1학년 1·2학기 성적을 분석해 봤다.

현재 중학교 3학년이 고등학생이 되는 2014학년도부터 고교 내신 평가 방식이 절대평가로 바뀐다. 학년 석차를 9등급으로 나누는 현재의 상대평가와 달리 학교생활기록부에 석차 등급 대신 과목별로 6단계 성취도(A-B-C-D-E-F)를 적는 방식이다. 상대평가가 도입(2005년)된 지 9년 만에 내신 틀이 확 바뀌는 것이다. 이미 중학교에서는 지난해 중1부터 순차적으로 절대평가가 도입됐다. 현재 중 1·2학년이 절대평가를 받고 있다. 원래 중학교 학생부에는 과목별 석차와 함께 수·우·미·양·가를 적었지만 이제는 A-B-C-D-E-(F) 성취도와 함께 원점수·과목평균·표준편차를 병기하고 있다.

 교육부는 “상대평가가 등수로 학생을 나란히 줄 세워 과도한 스트레스를 줬다”며 “학생들이 성적 불이익을 받을까 봐 적성에 맞는 다양한 과목을 선택하지 못했다”고 절대평가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일부 부작용이 나타날 조짐이 있다. 특목고 등으로의 쏠림 현상이다. 과거엔 특목고나 자율형 사립고 등에 다니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내신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하지만 고교 내신이 절대평가로 바뀌면 내신 불이익이 한순간에 사라져 이런 학교의 인기가 더 치솟을 수밖에 없다.

 평가 자체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학교가 내신 부풀리기를 할 것이라는 추측이 대표적이다. 2005년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바뀌었던것도 일부 학교가 과도하게 시험을 쉽게 내 내신 부풀리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본지와 교육업체 하늘교육이 학교알리미사이트(www.schoolinfo.go.kr)에 공시된 중학교 1학년 (1·2)학기 내신 결과를 살펴봤더니 가장 높은 A등급을 받은 학생의 비율이 학교별로 큰 차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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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을 선발하는 서울 강북구 영훈국제중은 지난해 2학기 수학 A등급 학생 비율이 83.5%나 됐다. 10명 중 8명 넘게 최상위 등급을 받은 것이다. 반면에 강남구 개포중은 수학 A등급이 2.1%에 그쳤다. 대원국제중(59.8%)과 강남구 대청중(47.4%), 강남구 언주중(46.7%), 마포구 숭문중(45.6%), 양천구 양정중(43.4%) 등도 수학 A등급 비율이 높았다. 반대로 수학 A등급이 10% 미만인 학교 역시 강남구 수서중(5.8%) 등 20곳에 달했다. 영어에서도 학교 간 A등급 비율이 크게 엇갈렸다. 국제중인 영훈국제중과 대원국제중이 각각 89.6%, 68.3%로 높았다. 노원구 상명중(55%), 송파구 보성중(49.4%) 등도 높다. 반면에 강북구 창문여중(3.4%), 강동구 동신중(5.9%), 광진구 광장중(6.6%), 성동구 경수중(7.5%), 노원구 녹천중(8.4%), 동작구 성남중(8.5%), 노원구 상계제일중(9.7%), 강북구 인수중(9.7%), 광진구 건대부중(9.9%) 등 9곳은 10% 미만이었다.

학교별 격차가 큰 것은 지역·학교에 따른 실제 학력 차이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A등급 비율이 많게는 수십 배까지 차이가 난다면 일부 학교가 절대평가 전환 이후 시험을 기존보다 쉽게 냈기 때문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예컨대 같은 국제중인데도 2학기 내신에서 영훈국제중 과목별 A등급 비율은 대원국제중보다 월등히 높다. 반대로 1학기에는 대원국제중의 A등급 비율이 영어 87.1%, 수학 68.1%, 국어 64.4%로 영훈국제중보다 훨씬 높았다. 두 학교 학생의 학력 수준이 1학기만에 급격히 바뀔 리는 없기 때문에 시험 난이도에 문제가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중2 자녀를 둔 엄수영(39·강남구 압구정동)씨는 “학교별 편차가 이렇게까지 심한 줄 몰랐다”며 “다른 학교의 A등급이 40%를 넘을 정도로 많다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지난해 2학기 영어·국어 A등급 비율이 극히 낮았던 D중 교감은 “절대평가로 바뀐 만큼 학생 성적을 좋게 해주려면 시험을 쉽게 출제했어야 한다”며 “별생각 없이 예년 수준으로 냈더니 A등급이 적었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다른 학교들이 내신 부풀리기를 했다고 보는 것이다. 2학기 국어 A등급 비율이 낮았던 D여중의 교무부장은 “A등급 비율이 낮은 학교를 공부 못하는 학생이 모인 곳이라고 몰아붙여선 안 된다”며 “A등급이 너무 많이 나온 학교나 적게 나온 학교 모두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목고 등 학생을 선발하는 학교의 내신 불이익이 사라질 예정이어서 이런 고교에 진학하려는 학생은 더 많아졌다. 중학교 내신이 전보다 중요해졌고, 입시에 민감한 일부 학부모는 시험을 쉽게 내달라고 학교 측에 요구하기도 한다.

 이미애 샤론코칭&멘토링 대표는 “강남에선 A등급이 많은 학교로의 전학을 고민하는 학부모도 있다”며 “특히 외고 입시에서는 영어 내신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다들 우선 A등급을 받아두자고 생각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강남의 한 중학교 교사도 “다른 학교에서 시험 난도를 낮춰 A등급을 높였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학교가 갈팡질팡하면서 같은 학교에서조차 1학기와 2학기 내신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현상도 빚어진다.

강남 3구 중학교 중 과목별 A등급 비율이 지난해 1·2학기에 15%포인트 이상 달라진 곳은 모두 17곳(수학 6곳, 영어 6곳, 국어 5곳)이었다. 가령 강남구 단대부중은 1학기 국어 A등급이 20.5%였는데, 2학기에는 41.8%로 뛰었다. 영어 내신은 거꾸로 1학기 A등급이 45.6%였다가 2학기에 16%로 떨어졌다. 수학 과목 A등급 비율에서 강남구 언주중은 1학기 9.6%였다가 2학기 46.7%로 급등했고, 강남구 대청중 역시 1학기 12.1%에서 2학기 47.4%로 30%포인트 이상 올랐다.

 가장 곤란한 건 중학교 교사들이다. 중간·기말고사 난이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내신 절대평가 결과를 반영해 2015학년도에 치러질 특목고 입시안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치동의 한 중학교 수학교사는 “강남은 우수한 학생이 많아 조금만 시험을 쉽게 내면 A등급 비율이 확 올라간다”며 “1학기는 기존 시험과 비슷하게 내고 2학기에 쉽게 냈더니 A등급 비율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올라가더라”고 말했다. 그는 “시험을 어렵게 내면 학부모 사이에 우리 학교만 손해본다는 얘기가 나오고, 쉽게 내면 최상위권 학생의 학부모가 나중에 특목고 입시에서 손해본다고 항의하니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사교육이 줄 것이라는 교육당국의 기대도 빗나가고 있다. 대치동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윤모(48)씨는 “예전에는 특목고·자율고에 가려는 학생만 중학교 내신에 신경을 썼는데, 절대평가 도입 후 모든 학생이 내신 대비 체제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그는 “중위권 학생도 일단 특목고 진학을 염두에 두고 사교육을 찾기 때문에 교육정책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 됐다”고 주장했다.

A등급 많이 주는 중학교 다니면 고교 진학 유리할까

“선생님은 A등급이면 실제 점수와 상관없이 다 똑같다지만 나중에 특목고 입시에서 중학교 내신을 어떤 식으로 반영할지 모르잖아요. 답답할 뿐입니다. 내신 변별력 때문에 교육부가 A등급을 더 쪼갤 거란 얘기도 돌던데요.”(중 2 자녀를 둔 서울 노원구 상계동 김모씨)

 “자기만 열심히 하면 다른 학생 성적과 무관하게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으니 좋은 것 아닌가요. 그런데 생활기록부에는 원점수와 표준편차가 나오니 결국 상대평가와 마찬가지로 서열화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중 2 자녀를 둔 강남구 대치동 고모씨)

 지난해 중학교 1학년의 절대평가 결과를 받아 든 학부모가 고민에 빠졌다. 2015학년도 고교 입시부터 절대평가를 반영하지만 구체적인 입시안은 아직 오리무중이기 때문이다.

 요즘 중학교 관계자와 학부모, 학생은 절대평가 결과를 놓고 주판알 튀기느라 바쁘다. A등급(성취도 90% 이상)을 많이 주는 중학교가 어디인지, 또 유리한지 아닌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과거엔 주로 특목고와 전국 단위 자율고 등을 목표로 한 일부 상위권 학생이 내신에 예민하게 반응했지만 이젠 사실상 모두의 관심사가 됐다. 고교 내신도 절대평가가 되면 특목고 학생 등이 불이익을 받지 않기 때문에 특목고 선호 현상이 심화되는 데다, 중위권 학생까지 특목고를 노리는 탓이다. 과거 상대평가 시절엔 아무리 내 성적이 좋아도 서열이 밀리면 특목고 갈 생각을 못했지만 이젠 순위와 상관없이 내 점수가 좋으면 가능성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절대평가 결과가 학교별로 차이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학교가 시험을 쉽게 내 A등급을 많이 만들면 정작 최상위권 학생은 손해를 볼 수 있다거나, 거꾸로 시험을 어렵게 내면 다른 학교에 비해 손해를 본다는 얘기가 떠돈다.

 과연 어떤 게 유리할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일단 중학교 내신 상위 50%가 지원할 수 있는 서울 지역선발 자율고(휘문고·한가람고 등)는 별 영향이 없다. 지난 2월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2015학년도 서울 자율고 입시안에 따르면, 각 과목별 성취도 A-B-C-D-E에 순서대로 5·4·3·2·1점을 준다. 원점수가 100점이든 91점이든 A등급이면 똑같은 5점이다. 교육청은 3년간 이수한 전 과목의 성취도 점수를 합해 과거 상대평가처럼 중학교 3년 종합 석차를 내기로 했다. 대학 학점제와 비슷하다. 이렇게 낸 석차로 내신 50%를 가르겠다는 것이다.

 한보석 서울시교육청 학교지원과 주무관은 “일선 중학교에서 A등급을 많이 주려고 시험을 쉽게 내는 경향이 나타나 보완책을 고민 중”이라며 “적어도 서울 지역 자율고 입시와 관련해선 성적 부풀리기를 해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3년 종합 석차에는 출석·행동발달·봉사활동과 창의적체험활동 등 비교과 부분 점수도 반영된다. 총점 300점 중 교과가 240점, 비교과가 60점이다.

 3년 종합석차가 동점일 경우 전 학년 비교과성적 총점이 높은 사람이 가장 유리하다. 그 다음이 교과 성적 고득점자, 마지막이 3학년 2학기 과목별 원점수가 높은 학생이다. 매 학기만 보면 절대평가지만, 중학교 3년 전체를 놓고 보면 상대평가를 적용하는 셈이다.

 이 같은 내신 산출 방법이 특목고(외국어고·과학고)와 하나고·용인외고 등 전국 단위 모집 자율고에도 똑같이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심재헌 서울교육청 장학사는 “특목고 입시에서 중학교 내신 산출 방법은 논란이 많다”며 “어떤 방식으로든 변별력을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중학교 교사는 “결국 특목고·전국 단위 자율고가 중학교 내신을 어떻게 반영하느냐에 따라 각 학교의 절대평가 A등급 인원 관리 양태가 달라질 것”이라며 “동점자가 수두룩하면 나중에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시험을 무조건 쉽게 내지는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절대평가(성취평가제)
일정 기준 이상의 점수만 받으면 동일한 등급을 주는 내신 산출방법이다. A-B-C-DE-
F 6단계가 있다. 중간·기말고사 성적과 수행평가 결과를 합쳐 총점을 낸다. 90점
이상은 A, 80점 이상은 B, 70~80점은 C, 60~70점은 D, 60점 미만은 E 등급을 받는
다. F는 40점 미만으로, 올해 시범 평가 후 내년에 도입한다. 2014년에는 중학교 전
학년과 고교 신입생, 2016년에는 중·고교 모든 학생이 절대평가를 받는다.

김성탁·정현진·전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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