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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급식·학대·횡령 … 겁나는 어린이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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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2월 중순의 어느 날, 오전 9시쯤 서울 송파구 석촌동 S어린이집 원장 J씨(48·여)는 잠실의 한 아파트 앞에서 지범(가명)이를 통학 차량에 태웠다.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지범이는 엄마와 떨어지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J원장은 짜증이 나자 동요 CD의 볼륨을 최대로 올렸다. 다른 아이들까지 울거나 귀를 막고 얼굴을 찡그렸다. “고막이 찢어질 정도였어요. 나도 견디기 힘들었는데 애들은 오죽했을까요.” 보육교사 주성미(29·가명)씨의 말이다. 어린이집에 도착한 뒤에도 아이가 계속 울어대자 원장은 “또 시작이야. 시끄러워 죽겠네”라며 이불로 아이를 덮어버렸다. 나중에는 아이를 위층 독방으로 데려가라고 지시했다.

 강동구 I어린이집은 배추 시래기를 대량으로 삶아 냉장고에 얼려 보관해 왔다. 아이들 국거리용이다. 이 어린이집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전직 보육교사(31)는 “식자재비를 아끼기 위해 가락시장 바닥에 떨어진 배추 시래기를 식자재 유통 업자로부터 싼값(한 묶음당 3000원가량)에 사들여 국을 끓일 때마다 넣었다”고 전했다.

 영·유아를 돌보는 일부 어린이집의 일탈이 도를 넘었다. 아동학대만이 아니다. 불량급식 문제도 심각하다. 일부 어린이집은 국고로 지원되는 보육료에 급·간식비가 포함돼 있음에도 매달 불법으로 별도의 급식비를 챙겨왔다. 이는 본지 취재팀이 어린이집 실태에 대한 제보를 바탕으로 취재한 결과다. 또한 유기농이나 국내산 식자재를 쓴다고 홍보하고 실제로는 값싼 중국산을 사용하거나 정량의 3분의 1 수준만 제공하기도 했다.

 공금 빼돌리기 등 다양한 탈·불법 행위도 확인됐다. 예산 부족으로 올 하반기부터 전국 지자체에서 보육대란 사태가 우려되는 가운데 정작 현장에서는 세금으로 어린이집에 지원한 국고보조금이 줄줄 새고 있었다. 실제 근무하지 않는 사람이나 운전기사·보조교사를 정식 보육교사로 허위 등록하거나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는 아이를 명의만 등록(일명 ‘유령 원생’)시키는 수법을 동원해 보육료를 더 타냈다.

 이와 관련해 서울 송파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은 지난 2월부터 3개월 동안 서울 남부권(강남·강동·서초·관악구)과 수도권(성남·의정부) 등 모두 700여 곳의 어린이집에 대한 조사를 벌여 지난 3년간 최소 100억원대의 국고보조금을 횡령한 혐의를 포착했다. 또 학부모가 매달 10만~15만원씩 부담하는 특별활동비도 제대로 쓰지 않고 빼돌린 어린이집을 다수 적발했다. 경찰에 따르면 현재까지 적발된 어린이집 한 곳당 적게는 2000만원에서 많게는 5억원가량의 공금(국고보조금+특활비 등)이 빼돌려진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팀은 빼돌려진 공금 총액이 줄잡아 200억~300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적발된 어린이집 중에는 ‘서울형어린이집’도 다수 있었다. 부족한 국·공립 어린이집을 보완할 목적으로 서울시가 엄격히 평가한 후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로 인증한 곳이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상습적으로 불법 운영을 한 어린이집은 경찰에 수사 의뢰했고 개선대책도 마련해 상시 모니터링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송파서 수사팀 관계자는 “형사 처벌과 별개로 어린이집 보육 시스템 전반에 대한 점검과 보완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탐사팀=고성표·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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