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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어린이집 평가인증도 허술 날짜 미리 통보…준비해 점검 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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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자체가 평가인증한 어린이집에서조차 아동학대나 불량급식, 국고보조금 횡령 등 불법 운영이 버젓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어린이집에 대한 엄마들의 불신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울시의 경우 6700여 개(4월 말 기준)의 어린이집 가운데 시가 인증한 ‘서울형어린이집’은 2400여 개에 달한다. 하지만 다수의 서울형어린이집이 여러 형태의 불법 운영을 하다 적발돼 현재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지자체의 평가인증 과정이 허술하거나 어린이집 원장들이 평가를 앞두고 기준에 맞게 임시방편으로 미리 대비를 하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평가받는 날만 넘기자는 속셈으로 필요한 기구(칫솔소독기 등)나 교구 등을 다른 어린이집에서 빌려와 채우고 다시 돌려주는 식으로 대비를 하는 어린이집도 많았다.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평가인증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 송파구의 한 서울형어린이집에서 최근까지 근무한 보육교사 이성미(31·가명)씨는 “평가인증 때 시에서 공무원 2~3명이 나와 시설과 위생상태, 아이들의 하루 일과를 지켜보고 보통 3개월치의 각종 회계 서류와 교육 프로그램을 살펴본다”며 “하지만 평가 전 미리 날짜를 통보해 주기 때문에 문제가 될 만한 것은 다 치우고 대비한다”고 말했다. 강동구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인 박미자(27·가명)씨도 “며칠 밤을 새워 회계장부나 가정통신문 같은 서류를 완벽하게 맞추는 작업이 이뤄진다”며 “원장 지시로 가짜 영수증을 만들어 증빙서류에 문제가 없도록 작업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강남구 소재 어린이집 보육교사 민병희(34·가명)씨는 “아이들에게도 짜인 각본대로 말하게끔 미리 교육시키고 시설물 중 위험 요소가 있는 것은 미리 다 치운다”며 “평가인증 기간에는 정말 이상적인 모습의 어린이집으로 180도 탈바꿈했다가 평가가 끝나면 며칠 못 가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온다”고 했다.

 학부모 동의가 필요한 특별활동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부모 동의서의 서명을 보육교사 몇 명이서 돌아가며 가짜로 만들지만 감사나 평가인증 과정에서는 전혀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보육교사 이성미씨는 “각종 서류나 증빙자료도 정말 꼼꼼히 들여다보면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을 텐데 실사 나온 공무원들이 대충 보고 지나가는 것 같다”며 “서울뿐 아니라 다른 지자체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탐사팀=고성표·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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