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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생물학과 새정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21호 30면

생명을 합성할 수 있을까? 이미 존재하던 생명체에서 몇 개의 유전자를 조작해 남의 형질을 도입한 새로운 생명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디자인한 그야말로 새로운 인공 생명체를 합성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다. 인공 생명체라고 하면 머리와 팔다리가 있는 어떤 존재가 떠오르겠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단지 박테리아의 지놈(유전체) 전부를 인공적으로 합성해 다른 박테리아의 세포막 안에 이식, 전혀 다른 세포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이때부터 ‘합성생물학’이란 말이 생겼다.

 합성생물학은 자연 세계에 존재하는 생물 시스템을 재설계하거나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 구성 요소와 시스템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기술’이다. 인위적 조작을 쉽게 하기 위해 기술자들은 생명을 부품화하고 표준화하고 모듈화한다. 마치 다양한 레고 조각을 만들어 놓은 후 이것으로 온갖 형태를 만드는 것과 같다.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다. 실제로 자연은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합성생물학의 선두 주자는 미국의 크레이그 벤터다. 1998년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회사를 차려 불과 9개월 만에 지놈 지도 초안을 완성했다. 30억 달러(약 3조 3000억원)의 공공자금이 투입된 인간지놈프로젝트를 무색하게 만든 인물이다.

 그 후 벤터는 비영리연구소를 차리고 합성생물학에 매진하고 있다. 그의 목적은 거창하고 고상하다. 오염 물질을 먹고 에너지를 생산하는 인공생명을 창조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벤터는 ‘최소생명체’를 추구한다. 최소생명체란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유전자만 갖춘 생명체를 말한다. 최소생명체를 만드는 이유는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원하는 물질만 대량으로 생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벤터의 삶과 도전을 볼 때 문득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정치인으로 변신한 안철수 의원이다. 서울대 의대 출신 교수, 의사, 성공한 기업가에서 상처 난 젊은이들의 가슴을 치유하는 강연가로,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험난한 정치인의 길에 들어선 안철수의 꿈은 고상하고 거대하다. 하지만 꿈을 실현하기 위한 자산(資産)들을 살펴보면, 합성생물 기술자 크레이그 벤터와 정치인 안철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 듯 보인다.

 생물을 합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레고 조각이 필요하다. 합성생물학 분야의 또 다른 축인 미국의 BIOFAB(※합성생물학을 위한 공공프로젝트 이름)의 드루 앤디가 하는 일이 이것이다. 그는 한 가지 독립 기능을 수행하는 생명의 표준부품을 만들려 한다. 바이오브릭, 즉 생명 벽돌이라고 지칭된다. 앤디는 레고 조각을 목록화하고 대량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안철수에게도 다양한 레고 조각이 대량으로 필요할 것이다. 이 조각마저 안철수가 만들 수는 없다. 누군가가 공급해 줘야 한다. 그런데 안철수에게는 레고를 목록화하고 생산하는 동역자(同役者)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안철수에게 새 희망을 품고 ‘안철수 현상’을 만든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데도 왜 새로운 정치의 레고 조각을 만들어 공급하는 사람이 없을까? 간단하다. 안철수가 말하는 ‘새로운 정치’에는 설계도가 없기 때문이다. 안철수 지지자에게 그를 지지하는 이유를 물으면 그가 새로운 정치를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정치가 뭐냐고 물으면 그것은 안철수가 하려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리처드 파인만은 “내가 만들지 못하는 것을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역은 참이 아니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우리는 만들 수 있다. 예컨대 우리는 생명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미 인공생명체를 만들고 있지 않은가. 새로운 정치가 뭔지 이해하지 못할망정 안철수가 그걸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3월 중순 런던에서 열린 한 회합에서 벤터는 “우리는 거의 다 왔습니다. 단지 논문으로 제출하지 않았을 뿐이죠”라고 말했다. 그의 장담이 허풍일지라도 합성생물학은 더 근본적인 생물학의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안철수의 새정치 바람이 한국 정치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정치가 안철수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정모 연세대 생화학과·대학원 졸업. 독일 본 대학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달력과 권력』 『바이블 사이언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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