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꿈의 사다리 미국 로스쿨, 저소득층 학생에겐 ‘악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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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로스쿨은 끝났다
브라이언 타마나하 지음
김상우 옮김, 미래인
328쪽, 1만5000원

지난달 29일 서울지방변호사회 주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이어졌다. 서민층의 법조계 진출 기회 박탈, 법률서비스의 질 저하…. 로스쿨은 실패한 제도일까. 이 책(원제 Falling Law Schools)의 출간은 예사롭지 않다.

 지은이는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 로스쿨 교수다. 그는 교육현장에서 자신이 목격한 미국 로스쿨 시스템의 맹점을 통렬하게 고발한다. 주된 타깃은 동료들이다. 종신재직권(tenure)에 거액의 연봉을 받으며 특권집단이 돼버린 로스쿨 교수들. 그들이 법학 교육을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 만든 장본인이란 주장이다.

  예컨대 그들은 로스쿨 인가권을 쥔 미국변호사협회와 결탁해 이민자·저소득층이 다니는 저비용·비인가 로스쿨을 몰아낸다. 학교 측에는 ‘유능한 인재 영입’을 명분으로 교수 연봉 인상을 압박한다.

 특히 로스쿨 순위 경쟁과 입학생 유치를 위해 취업률을 조작하는 수법을 보면 과연 법과 정의를 가르치는 곳인지 되묻게 된다. 졸업생을 조교 같은 임시직으로 고용하고, 슈퍼마켓 점원까지 기업계 취업으로 분류해 취업률을 90%로 부풀리는 것이다. ‘개천의 용(龍)’이 되기 위해 입학하는 저소득층 학생들이 최대 피해자다.

 로스쿨 졸업 비용은 20만 달러(약 2억2000만원). 장학금은 주로 LSAT(로스쿨 입학시험) 점수가 좋은 부자 학생들의 차지다. 졸업자 3명 중 1명 꼴로 12만 달러의 빚을 진다. 이렇게 해서 자격증을 따더라도 2명의 새내기 변호사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1개 이하. 출세의 사다리가 거대한 사기극의 소품으로 전락해버린, 암울한 풍경이다.

 진보적인 교수들로 채워진 명문대 로스쿨이 등록금 인상을 선도해 경제적 장벽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 적잖은 울림을 준다. 그러나 이제 2기 졸업생을 배출한 한국 로스쿨과 맞바로 비교하는 건 곤란하다. 다만 미국 로스쿨의 전철을 밟지 않게끔 문제점과 부작용을 고쳐나가야 한다. 완벽한 제도는 없다.

 지은이가 ‘저렴한 공립 로스쿨’을 대안으로 제시한 뒤 에필로그에 적은 문장 하나. “(서민층 출신인) 나로서는 지금 같은 시대라면 로스쿨 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 주변의 법조인들에게서 자주 듣는 얘기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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