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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초모랑마] 2. 해발 490m 추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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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오후 고소 적응 훈련을 위해 아일랜드 피크( 6189m)의 성공적인 정상 등정을 마친 뒤 엄홍길 원정대장(왼쪽에서 일곱째)과 대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추쿵=오종택 기자

‘밤이 무서워요.’
히말라야 원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고소 적응이다.고소에 적응되면 ‘원정의 절반은 성공’이라고 할만큼 매우 중요한 요소다.해발 3천m만 올라도 산소는 평지의 50%밖에 안 된다.그리고 7천m 이상에서는 30%를 밑돌 정도로 희박하다.2005 한국 초모랑마 휴먼원정대원도 비록 고소적응을 위해 매일 4~5시간씩 산행을 했지만 지난 달 22일 캐러반 중 마지막 롯지가 있는 추쿵(4천9백m)에 도착하니 대부분의 대원들은 고소에 시달렸다.

산악인 김진성(42)씨가 쓴 ‘한국 산악인의 히말라야 조난사’에 따르면 ‘적어도 하루 1천m의 고도를 높이면 1~2일은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고소증세 예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고소증세는 아무리 쉰다고 해서 회복된다는 보장이 없다.특히 밤만 되면 기온이 떨어지고 기압이 낮아져 증세를 더 심하게 느끼게 된다.그래서 에베레스트 캐러반을 하는 중간 중간에 있는 롯지에 들어가면 ‘무서운 고소증세!죽음은 밤을 기다리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종종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고소증세가 어떠한 것인지를 모른다.고소증세는 머리가 찌근 찌근 아픈데다 심하면 구토 증세와 함께 아무 것도 입에 대기 싫어지며 위액까지 나올 정도로 심해진다.이는 고소증세의 중증으로 아무 것도 먹지 못하므로 힘이 없어지고 당사자는 무기력해지기 마련이다.대개 이러한 증세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해발 3천m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이 증세가 심해지면 뇌수종이나 폐수종으로 목숨을 잃게 된다.그러므로 머리가 지끈 지끈 아프기 시작하고 밤에 잠도 못자고 계속해서 두통을 호소하면 무조건 고도를 낮춰 하산하는 것이 상책이다.

처음 히말라야에 오게 된 전경원(계명대 OB,32) 대원은 “국내에서 선후배들이 히말라야의 고소 적응에 대해 얘기하면 한 쪽 귀로 흘렸는데 막상 닥쳐 보니 모든 것이 다 귀찮아 지더라”며 “말로만 듣던 고소증세가 이처럼 무서운 것인 줄은 처음 알았다”고 강조한다.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항상 걸음걸이를 천천히 하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듣게 된다.그러나 트레킹이나 캐러반을 하다 보면 3천m 전후가 되도 숨만 조금 가쁘지 아무런 증세가 나타나지 않게 돼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내에서 산행하는 것처럼 보폭을 크게 하게 마련이다.그러다 어느 순간 고소증세가 갑자기 나타나게 돼 힘도 못 쓰는 경우가 많다.

1993년 5월10일에는 국내 최초의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 지현옥 대장이 2명의 대원과 함께 정상을 밟아 세계에서는 16번째 여성 등정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지현옥씨는 1999년 안나푸르나 원정에서 정상을 등정하고 하산하는 길에 고소증세로 목숨을 잃었다.

전대원은 지난 달 17일 루크라에 도착해 팍딩(2천6백m)에서 하루를 묵고 남체 바자르(3천4백m)까지 오른 후 고소 적응을 위해 하루를 더 쉬었다.그리고 텡보체(3천8백m,20일)~딩부체(4천4백m,21일)를 거쳐 22일 추쿵에 도착했다.

전대원은 남체 바자르에서 엄홍길(트렉스타,45) 등반대장의 뒤를 부지런히 좆아 추쿵까지 올랐던 것이다.그러나 이것이 화근이 됐다.아무리 강인한 체력을 가졌어도 자신의 페이스를 잃다 보니 고소증세를 호소하게 된 것이다.

그는 ‘산의 선후배가 히말라야에 왜 그대로 남아있어야 하는가’하는 의미를 찾기 위해 다니던 직장도 그만 두고 봄철 예정했던 결혼식도 뒤로 미룬 채 원정대에 참가했다.그래도 전직 육군 대위 출신인 전대원은 강인한 정신력으로 추쿵에서 눈보라를 헤치고 고도 1천m를 낮춰 팡보체(3천9백m)까지 내려와 3일 밤을 지냈다.

김인환(계명대 OB,28) 대원은 ‘매일 밤 경원 형이 ’끙 끙‘ 앓다가 소리가 끊어지면 혹시 일이 잘못 됐나 싶어 침상으로 달려가 맥박을 재 보았다“며 ’경원 형의 경우 고소증세를 심하게 앓아 이틀은 밥을 굶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김대원은 지난 2000년 임자체봉 정상을 밟았으며 이번 원정에서는 지난 해 같이 목숨을 잃은 장민 대원과 친한 자일 파트너로 산악 활동을 했던 산악인이다.그도 추쿵에서 약한 고소증세를 보여 같이 하산했었다.

그런가 하면 히말라야의 5천m 이상의 고도를 처음으로 경험한 MBC 김주만(34) 기자는 딩보체부터 고소를 느끼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정신력으로 베이스 캠프까지 올랐다가 추쿵으로 하산했다고 말한다.김기자는 이번 원정을 떠나기 전 의사를 만났더니 ‘고소증세는 일종의 풍이다.약을 먹으면서 올라가면 사회에 돌아와 적응한다는 것이 무착 힘들다’고 말한다.그러면서 “내가 생각한 히말라야는 사색도 하고 인생을 느낄 줄 알았는데 몸소 부딪혀 보니 낭만의 장소가 아니었다”며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을 느끼며 삶의 성찰을 생각하게 만들었던 곳”이라고 말한다.

한편 지난 달 27일 남체 바자르에서 만난 돈오스님도 고소증세 때문에 하산한 경우다.스님은 동안거를 마치고 도반들과 함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와 고교피크를 트레킹하기 위해 히말라야를 찾았는데 페리체 부근(4천2백m)에서 고소증세가 보여 남들에게 짐을 지어주기 싫다며 혼자 먼저 남체까지 하산했다고 말한다.

중앙일보사가 후원하는 2005 한국 초모랑마 휴먼원정대가 지난달 25일 네팔의 임자체봉(6천1백89m)을 등정했다.지난달 28일 남체 바자르(3천4백m)에 무사히 내려왔다.이들은 9일간의 캐러반 끝에 지난달 254 임자체봉 베이스캠프95천1백m)에 도착했다.그리고 25일 오전 9~10시경 엄홍길 대장을 비롯한 정오승(43),박근영(40),박창수() MBC 맨과 4명의 셰르파가 차례로 고소적응을 위해 도전한 임자체봉 정상을 밟았다.그리고 이들은 하산하던 중 5천6백m 지점에서 뒤늦게 정상을 향해 오르던 4명의 일본 남녀 혼성대(대원 3명,일본인 가이드 1명)중 1명의 산악인이 오카모도 마사오(61)씨가 설사면에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헬리콥터가 착륙할 수 있는 5천3백여m의 평지까지 안전하게 하산시켰다.

한편 원정대는 일정을 하루 앞당겨 텡보체(3천8백m)~남체~루크라를 거쳐 30일 카투만두에 도착한다.그리고 지난 해 초모랑마(8천8백50m,에베레스트의 티벳명)에서 숨진 계명대학교 백준호,박무택,장민씨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오는 5일 티벳으로 출발할 계획이다.

김세준 중앙m&b기획위원 <sjkim@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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