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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범수용소에 갇힌 그들 위해 최소한 슬퍼라도 해줬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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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4호 수용소 탈출』의 저자 블레인 하든(오른쪽)과 책의 주인공 신동혁씨.

“한국 정부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는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같은 민족이다. 그들을 위해 아무 것도 못하더라도 최소한 함께 슬퍼할 줄은 알아야 한다.”

 정치범 수용소에서 태어나 2005년 탈북한 신동혁(31)씨는 2일 오전 서울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 『14호 수용소 탈출』(Escape from Camp 14)의 한국어판 발간을 기념해 저자인 블레인 하든과 한국을 찾았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선 이성 간 접촉을 금지하고 있다. 극히 소수의 모범수 남녀가 간수의 선택을 받아 5일간 합방하는데 이를 ‘표창 결혼’이라고 한다. 신씨는 지난 1982년 수용소 안에서 표창 결혼의 결과로 출생했다. 이후에도 그의 삶은 기구했다. 13세 때 그는 살아남기 위해 어머니와 형이 수용소 탈출을 모의한 사실을 간수에게 고발했고 결국 두 사람이 공개 처형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언론인이자 작가인 하든은 2008년 12월부터 2년 반 동안 신씨와 인터뷰한 내용을 책으로 썼다.

<중앙일보 2012년 2월 29일자 12면

이 책은 지난해 3월 미국에서 선보이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24개 나라에서 번역·출간됐다. 할리우드 제작사에서 판권을 사들여 영화화도 추진하고 있다.

 하든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가 어떻게 해서 가장 큰 행운을 얻어 탈출할 수 있었는지를 담은 이야기”라며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끔찍한 수용소가 있다는 걸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탈북자 가운데도 정치범 수용소 출신이 60명이나 된다”며 “위성사진으로 볼 때 최근 3년 사이 수용소 규모는 더 커지고 있다”고 했다.

 신동혁씨는 한국 국민의 무관심을 아쉬워했다. “몇 년 전 제 손으로 직접 쓴 책을 한국에서 출간했지만 한국 사람은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래서 하든이 쓴 책의 한국판 발간을 반대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내 과거를 들춰내는 일은 끔찍하다. 그러나 이대로 넘어간다면 내 아버지를 비롯해 정치범 수용소에 있는 사람은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고 밝혔다. 신씨는 주로 미국에 머물며 북한 인권 문제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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