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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림 세 번 갔다" | 입치 두려웠으나 친지안부 궁금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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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형사지법합의 3부 (재판장 김영준 부장판사)는 11일 상오 10시 동백림을 거점으로 한 북괴 대남 적화공작단 사건 2회 공판을 열고 김중환(49·한일병원 피부과장·의학박사)과 그의 처 손영옥(44·불구속) ·천병희(29·성신여사대 강사) 피고인에 대한 검찰측의 직접 심문을 들었다. 다음 공판은 오는 15일.
김중환 피고인은 62년 8월부터 65년 5월까지 서독 「프랑크푸르트」대학병원의사로 있으면서 동백림을 3차에 걸쳐 왕복하면서 (공소장에는 5차 왕복) 북괴 공작원 이원찬과 접선, 고향(황해도 평산군 평산명 간포리)의 가족 안부를 물었으며 돌아올 때 미화 3백 「달러」와 서독화 3백 「마르크」의 돈(공작금이 아니고 여비라고 진술)을 받은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국내에 와서 간첩활동을 한 사실은 없다고 부인했다.
◇ 심문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중한 = 62년 9월초 「프랑크푸르트」에서 물리학 연구생으로 있는 서울 의대 동창생인 이상복의 소개로 의사 이수길을 통해 북괴 연락원 임석진을 소개받았다.
임이 동백림 주재 북괴대사관에 가면 이북 가족 소식을 알 수 있다면서 가자기에 처음에는 납치당할까봐 두려워 거절했다. 동백림에 다녀온다는 것이 법에 걸리는 줄은 몰랐다. 다만 수사기관의 오해와 북괴의 납치 등이 두려웠음 뿐이었다.
62년 9월부터 65년 9월 사이에 3차례나 동백림을 다녀왔는데 모두 임과 동행했었다. 처음 갈 때는 「푸랑크푸르트」에서 비행기로 서백림에 연락, 자동차 편으로 검문소를 지나 동백림에 들어서니 이원찬과 만났다. 이 원찬은 김일성대학 교수로서 동백림에 교환교수로 와 있었다.
이원찬으로부터 여비에 보태쓰라고 미화 3백 「달러」를 받을 때 그에게 자기 이름과 직장, 출신학교를 적어 주고 매달 1번씩 임석진을 통해 이원찬에게 편지내기로 했으나 노동당에 입당은 안했다.
귀국 후 65년 4월 한일병원 사무실에서 임석진에게 가명으로 「크리스머스·카드」를 보낸 것은 암호편지가 아니며 「푸랑크푸르트」에 있는 한국은행 구라파 지점 친구에게 『아내가 임신해서 입덧이 났다』는 안부편지를 보낸 것이다.
▲손영옥 = 남편이 구라파까지 왔으니 이왕이면 동백림까지 구경하자기에 공산지역인 줄 알기 때문에 겁이 나 가기를 거절했다.
▲천병희 = 65년 5월 3일 이 원찬의 안내를 받고 평양을 다녀왔다. 노동당에 입당은 하지 않고 다만 권유를 받았을 뿐이다.
한독사전에 기록된 은어 「입원」은 피신하라는 말이며 「병환」은 미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귀국 뒤 「라디오 ·A3」에서 피신하라는 연락만 받았을뿐 2년동안 어떤 지령도 받지 않았다. 벌써부터 그들에 대해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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