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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부정부패가 구석마다 미만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토록 탁류가 도도하게 사회각분야를 휩쓸고 있는 실정에서 공정하고 사심없이 일하는 사람은 고지식하고 쓸모없다는 낙인을 찍혀 이와같은 사회풍조에서는 합리주의가 있을수 없고 효율을 운운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경제의 계획적인 개발이 가능하려면 합리주의·과학주의의 정신이 더욱 일반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진리이나 오늘날과 같이 부패와 부정이 더욱 심화되어만 간다면 계획적개발의 정신적 기초는 완전히 붕괴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 이룩해놓은 경제성장은 빛나는 것이지만 그것이 사상누각으로 끝날 염려조차 없지 않을이만큼 오늘의 부정부패는 심각한 문젯점을 제기하고 있다. 물질적인 부는 인간에 의하여 창조될 수도 있고 파괴될 수도 있는 것이므로 사회적 부의 지속적인 축적과 성장은 인적자본의 건실한 성장없이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보잘것없는 부나마 이를 훌륭히 관리할 인간적 바탕과 사회적기반이 있다면 부의 축적이 그리 어렵지않다는 「A·마셜」의 소론을 빌릴것도 없이 경제성장의 궁극적 기초는 인적사회적 바탕이라 할 수 있다. 이런뜻에서 볼 때 최근의 이 나라의 경제성장은 오히려 단기적인 것에 불과하고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부패부정 때문에 성장력을 ??식한다는 평가를 받을수도 있을 것이다.
KAL기 도입에 따른 부정부패행위를 볼 때 이 나라 경제는 어디로 가고있는지 망연자실의 감을 누를길없다. 국민부담으로 마련된 국영기업체의 책임자가 부패부정으로 개인회사를 차리는 것이 비단 KAL뿐인가도 의심하게 된다.
빚더미에 싸인 수산개발공사를 위시해서 해공·조공도 문제시된지 이미 오래다. 뿐만아니라 차관도입에 따른 부정부패 정치자금을 이용한 정상적부패, 각종인허가사무에 수반하는 부패, 금융대출을 에워싼 부정부패, 세무행정상의 부패, 각종공사발주상의 부정부패 등 아래위를 가릴수 없고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는 부패부정을 보고도 집권층은 왜 속수무책인가.
부정부패의 만연을 초래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집권층은 심각한 반성을 서둘러 할 것이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오늘의 부정부패를 가져온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국민의 가치관을 전도시킨 정실이라고 생각한다. 혈연 지연 그리고 운명적동일체로 간주하는 파벌의식이 근본적인 부패부정의 원인이다. 너는 동기생이니 국영기업의 장이고 동향인이니 은행중역이고 나를 위해 공을 세웠으니 이 지위를 준다는 따위의 정실 때문에 오늘날 질서감이 완전히 붕괴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푼없이 전달노릇하던 자가 일약 거부가 되고 형편없던 중간관리자가 중역이 되는가 하면 공개경쟁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위인이 고관이 되는 기적아닌 기적을 보아온 일반국민이 재래의 가치관에 회의를 갖고 그를 부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현 상황에서 부패부정은 오히려 생존본능적인 것이라 할수도 있을지 모른다. 본능적충동을 자극한 책임은 집권층에 있다고 해서 결코 지나친 비난은 아닐 것이다.
이 나라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 지상명제라면 그를 뒷받침할 정신적기초의 굳건한 확립이 절실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가치관을 교란시킨 지난날의 비리를 결연히 배제시킬 정치적결단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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