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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의 미래] 핵에 거는 마지막 희망

중앙일보

입력

남아공 케이프 타운에서 서쪽 해안을 따라 약 50km쯤 북쪽에 위치한 코버그는 황무지 벌판에 멋 없는 건물 몇채와 노후한 핵 냉각탑 두개가 덩그렇게 솟아 있는 황량한 곳이다. 남아공 광산에너지부의 핵 테크놀로지 과장 첼리소 마쿠벨라는 이 황무지에서 ‘아프리카의 르네상스’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그 희망이 성사될 수 있을지 여부는 남아공 정부가 그곳에 세계 최초의 상업용 ‘페블베드’ 원자로 건설을 수락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 계획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페블베드 원자로의 혁신적인 디자인이 핵 에너지 시대로 향하는 매우 중요한 단계라고 말한다. 그들은 페블베드 기술이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경수로에 비해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신뢰할 만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파는 안전한 핵 에너지 같은 것은 없다며 코버그 프로젝트를 저지하겠다고 공언했다. 마쿠벨라는 “이 프로젝트가 채택되기 위해서는 먼저 안전성과 경제적 이점이 검증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코버그 프로젝트 지지자들은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페블베드 디자인은 4반세기 전 이미 1차 현장실험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60년대 독일에 15메가와트의 시험 모델이 세워져 21년 동안 훌륭한 성능을 보여줬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전세계에 반핵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예정보다 일찍 폐쇄되지만 않았다면 오늘날까지도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페블베드 지지자들은 그 원자로의 디자인이 체르노빌 유형의 대형사고를 거의 완벽하게 방지할 수 있는데도 폐쇄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 디자인은 굳이 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원자로의 노심이 녹아내릴 만큼 과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페블베드 발전소의 기본 디자인은 아주 단순하다. 다른 핵발전소들과 마찬가지로 페블베드 디자인도 통제된 핵분열 연쇄반응에서 나오는 열을 이용해 전기 터빈을 돌린다. 그러나 페블베드 발전소는 기존의 발전소들과 비교할 때 세가지 큰 차이점이 있다. 첫번째는 연료를 배열하는 방식이다. 표준 경수로에서는 고정 배열된 수천개의 금속 연료봉이 열을 생산한다.

그러나 페블베드 원자로에서는 연료가 테니스 공 크기의 흑연 球 형태(‘페블’이라고 불린다)로 돼 있다. 각각의 페블에는 세라믹이 코팅된 이산화 우라늄 미립자가 수천개씩 들어 있다. 두번째 차이점은 터빈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핵발전 터빈은 증기로 움직이는 반면 페블베드 시스템은 과열된 헬륨 가스를 이용한다. 세번째 차이점은 규모다. 코버그 원자로가 세워질 경우 그 크기와 발전용량은 1천1백메가와트급 경수로 발전소의 약 10분의 1에 불과할 것이다.

페블베드 원자로 지지자들은 원자로의 크기가 작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고 말한다. 페블베드 발전소는 기초부터 시작해서 약 2년 정도면 건설할 수 있다. 표준 경수로 발전소 건설 공기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페블베드 테크놀로지는 전국에 전기를 보낼 거대한 송전망을 구축하는 대신 전기회사들이 현지의 수요에 맞춰 시설용량을 조절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은 크기는 원자로의 사고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페블베드 원자로는 대형 원자로보다 빠른 속도로 열을 분산시키기 때문에 대형 사고의 위험을 한층 더 줄일 수 있다.

페블베드 원자로의 설계사들에 따르면 이 원자로는 이런 안전성 덕분에 복잡한 보조 시스템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경수로 발전소에서는 원자로 노심의 용융에 대비해 다중 냉각·제어 시스템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페블베드 테크놀로지는 그런 고비용 요인을 제거했다.

페블베드 지지자들은 페블베드 원자로의 흑연과 세라믹이 최고 섭씨 1천6백도의 고열에 견디며 물리학 법칙상 원자로는 그 이상 과열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페블베드 모듈형 원자로 컨소시엄의 최고경영자 데이브 니콜스는 “보조 안전 장치를 설치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사실 페블베드 디자인에는 경수로 발전소가 으레 갖추고 있는 보강 콘크리트 격납용기(원자로를 감싸는 용기)도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점이 환경론자들을 오싹하게 만들고 있다. 그린피스의 핵정책 분석가 짐 리치오는 “격납용기는 사고시 사람들을 방사능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페블베드 발전소라고 해서 본질적으로 안전할 것은 없다”고 말했다. 환경운동가들은 페블베드 원자로가 설계사들의 주장대로 녹아내릴 염려가 없다고 해도 방사능 누출의 위협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미국 메릴랜드州 타코마 파크에 있는 에너지·환경 조사연구소의 아르준 마히자니 소장은 원자로에 균열이 생겨 헬륨 가스가 누출될 경우를 상상해보라고 말했다. 원자로 안에 공기가 유입되면 흑연 연료 페블에 불이 붙어 방사능 연기가 대기에 누출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니콜스는 그런 우려에도 동요하지 않는다. 그가 이끄는 컨소시엄은 남아공에서 페블베드 원자로를 제조해 전세계에 수출하기를 원한다. 그는 1년에 10개만 건설해서 수출한다고 해도 5만7천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남아공의 국내총생산(GDP)이 약 7억달러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남아공 사람 대다수는 그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컨소시엄은 예비작업에 이미 5천만달러를 투자했지만 발전소는 아직 계획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언론에서는 화력발전에 필요한 저렴한 석탄이 풍부한 나라에서 굳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가며 그런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하는지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석탄에도 문제점이 있다. 석탄을 광산으로부터 공업지역까지 수송하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든다. 남아공의 대형 에너지 회사 엑셀론은 기존의 경수로 발전소 17개의 수명이 다하면 페블베드 기술로 대체하기를 원한다. 엑셀론은 또 2004년 미국내에 페블베드 발전소 건설을 위한 신청서 제출건으로 미국 핵규제위원회(NRC)와 교섭중이다.

미국에 새 원자력 발전소 건설 허가가 난지는 20년이 넘었다. 많은 미국인들과 남아공 사람들은 아직도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의 악몽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니콜스는 그런 두려움이 극복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는 “이것은 인식의 문제다. 페블베드 발전소가 어떻게 가동되는지를 사람들에게 설명하면 안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뉴스위크 Sam Seibert, Caille Millne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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