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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의 미래] 지나가는 바람을 붙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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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아우터 헤브리디스 제도 북단의 루이스 섬 주민들은 바람에 대해 잘 안다. 매년 겨울 대서양에서 강풍이 불어온다. 바람은 육지에 와서도 여전히 기세가 등등하다.

내륙 습지대의 풍속은 보통 시속 1백60km가 넘는다. 밖에는 양떼만 있고 사람들은 집안에 머문다. 여름에는 온화한 날씨와 때묻지 않은 전원을 찾아 관광객들이 온다.

그러나 여름에도 바람 불지 않는 날은 드물다. 지방정부 대변인 나이절 스콧은 “이곳 날씨는 변화무쌍하지만 바람만은 한결같다”고 말했다.

이 거친 기후가 마침내 루이스 주민들의 구세주가 될 판이다. 이곳은 벌써 몇대째 젊은이들이 타지로 떠나면서 갈수록 퇴락해갔다. 그러나 에너지 업계가 이 바람의 섬에 눈길을 돌렸다. 다국적기업 AMEC와 브리티시 에너지는 광활한 황무지와 습지대에 약 3백개의 초대형 풍력발전기를 세울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이 초대형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유럽 최대의 풍력발전 단지로서 영국 에너지 총수요량의 약 1%를 생산하는 한편 섬 주민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일자리와 돈을 창출할 것이다. 개발 예정지의 땅주인 스토노웨이 트러스트社의 이언 매카이버는 “바람이 불어오는 한 이 프로젝트의 혜택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의 기도에 마침내 응답이 온 것 같다. 전세계의 풍력발전 옹호가들은 풍력이야말로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대한 완벽한 대안이라고 말한다. 안전하고 고갈될 염려가 없으며 공짜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가장 저렴한 방법”이라고 브뤼셀에 본부를 둔 유럽풍력에너지협회의 크리스티안 캐르는 말했다. 그러나 부정적 시각도 있다.

마거릿 대처 정권에서 공보비서관을 지낸 원자력 옹호가 버너드 잉엄卿은 “‘녹색’이니, ‘지구의 친구들’이니 하고 자처하는 단체들이 그런 시설로 구릉지대가 망가지는 것을 구경이나 하고 있다니 믿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환경운동가들도 유보적 견해를 내놓았다. ‘지구의 친구들’의 지도자 로저 히그먼은 “환경을 훼손하는 점에서는 풍력발전도 다른 에너지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에너지 산업은 그런 사소한 불평에 개의치 않는다. 지난 7년 동안 풍력발전용 터빈의 세계 시장은 연평균 40%씩 성장했다. 전세계의 풍력발전 용량은 지난해에만 약 3분의 1이 증가했다.

풍력발전소가 늘수록 제작비는 떨어지고 성능은 강력해진다. 이제 터빈 제조업체들은 과거에는 이론으로만 가능했던 대형 터빈을 대량 생산한다. 오늘날 표준형 터빈은 최소 1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20년 전의 일반모델에 비해 배증된 성능이며 8백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게다가 그 배 이상의 성능을 지닌 차세대 제품도 이미 등장했다.신형 터빈은 덩치만 클 뿐 아니라 똑똑하기까지 하다. 수직형 기둥 위에 날개가 세개 달린 기본 디자인은 50년 동안 별로 바뀌지 않았다. 큰 차이점은 타워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신형은 키가 90m나 된다. 키가 클수록 더 강한 바람을 일정하게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개선해간다. 항공산업에서 가볍고 견고한 구조재들을 빌려왔다. 또 회전날개에 작은 수직 안전판을 달았다. 이것은 난기류를 일으켜 저속시 날개가 멈추는 것을 방지한다. 동네주민들이 가장 반기는 것은 최신 모델들이 소음이 줄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일부 자연 애호가들은 풍력발전을 싫어한다. 아직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지만 마치 구충램프를 향해 달려드는 모기들처럼 새들이 풍차날개에 몸을 던진다. 또 풍력발전 단지의 최적지는 대체로 풍경이 훼손되지 않은 구릉지대들이다. 그린피스의 스벤 티스케는 “미적 관점은 환경문제의 판단기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원자력발전소에 반대한다면 만인의 비웃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풍력발전소 확산 반대운동을 벌이는 영국의 미술사가 로버트 우드워드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웨일스 캠브리언 산맥 자락에 별장을 갖고 있는데 1990년대 초부터 그곳 풍경은 엇박자로 돌아가는 1백개의 풍차로 가득 채워졌다. “천하절경이 망쳐졌다”고 그는 말했다.

풍력산업이 해상시설로 눈길을 돌리게 된 데는 그런 불평이 한가지 이유로 작용했다. 해상 풍력발전소는 아무리 크더라도 육지에서 볼 때는 작게 보인다. 게다가 바닷바람은 발전량을 20% 이상 늘릴 수 있을 만큼 세차고 일정하다. 덴마크는 이미 이 아이디어의 타당성을 증명했다. 코펜하겐 북부 교외의 해변을 걷다보면 멀리 수평선 위로 줄지어 서 있는 20개의 풍차가 보인다.

해안에서 3km 떨어진 물속의 석회암 암초 위에 세운 것이다. 지난해 준공 당시 세계 최대의 해상 풍력발전 단지로 홍보된 이 시설은 3만 도시가구가 쓸 수 있는 전력을 만들어낸다. 이제 아일랜드 서해안에서 발트해에 이르는 광활한 바다에 풍력발전 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영국 풍력에너지협회의 닉 구돌 회장은 “해상 풍력발전의 장점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은행에서 돈만 빌릴 수 있다면 무궁무진한 개발이 가능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큰 관심이 없다. 해상 풍력발전소를 지어 운영하려면 비용이 육지에서보다 최고 40%가 더 든다. 생산된 전력을 육지로 끌어오기 위해 깔아야 하는 해저 케이블 비용부터 만만찮다. 터빈을 세우는 건설작업도 간단치 않고 유지·보수비도 많이 든다. 덴마크 컨설팅 업체 BTM의 페르 크로그스가르드는 “해상시설은 사치”라고 말했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풍력발전은 과연 가격 경쟁력이 있는가? 그 답은 간단한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연료인 바람이 공짜 아닌가. 돈은 주로 발전소 건립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것이 워낙 고비용이다보니 화석연료를 몰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캐르는 “풍력발전소를 신설하는 것보다 기존 발전소에 석탄을 더 넣는 것이 싸다”고 인정했다. 풍력 옹호자들은 오늘날 화력발전소를 짓는 비용과 풍력발전소를 짓는 비용은 거의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비교는 현실적 의미가 없다. 미국과 달리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발전용량이 공급과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새 발전소를 세워야 할 때도 있다. 기존 발전소는 낡아가고 환경규제는 갈수록 엄해진다. 영국 정부의 최근 보고서는 2020년께는 가격경쟁력에서 풍력이 원자력을 앞서고 천연가스에 버금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풍력업계는 다른 에너지원들과 비교가능한 확정수치를 제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

풍력 컨설턴트 앤드루 개러드는 그 이유를 두고 정치적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경제의 표면을 조금만 벗기면 바로 정치가 나온다.” 각종 에너지源의 보조금 수준을 결정하는 사람은 엔지니어가 아닌 공무원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결정은 바람보다 더 예측하기 어렵다.

바람은 한가지 큰 결점이 있다. 가끔 불지 않는 날이 있다는 점이다. 풍력을 열심히 이용하는 사람들은 풍차가 돌아가지 않는 날에 대비해 며칠분의 확실한 예비전력을 확보해둬야 한다. 골수 환경운동가들은 풍력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은 대가가 너무 고통스러워 앞장서는 정치인이 없지만 결국 엄격한 환경규제 외에 대안이 없다고 주장한다. 현재는 환경친화 면에서 풍력에 견줄 만한 에너지源이 없다.

환경운동가들은 대형 수력발전소에 대한 기대를 접었으며 어차피 유럽에는 수력발전소를 건설한 만한 곳도 별로 없다. 태양열 기술은 아직 엄두도 못낼 만큼 돈이 많이 들고 공간도 많이 차지한다. 그리고 나무 부스러기와 농업 쓰레기 등을 연료로 사용하는 증기 발전기 바이오매스(biomass)는 연료별로 소각로를 따로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복잡하다.

예컨대 재래식 석탄 화력발전소에서는 농업 쓰레기 등을 태울 수 없다. 루이스 섬 주민들은 바람에 미래를 걸었다. 7년 전 이곳에 이사온 나이절 스콧은 “요는 환경을 보존하자는 것이다. 풍력 에너지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먼 훗날에는 보호하고 자시고 할 서식지조차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터빈이 늪지대의 풍경을 훼손하는 것이나 혹시라도 바람이 잔잔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출처:뉴스위크 William Underhill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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