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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현대 대북사업 직접 챙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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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대상선의 대북 비밀 송금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송금을 전후한 시기에 청와대와 현대그룹 간에 형성됐던 밀월·유착 관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김대중(DJ)대통령은 현대의 금강산 관광사업에 일일이 간여할 정도로 대북사업을 직접 챙겼고, 현대 측이 밑지는 대북사업을 계속하는 대가로 청와대가 각종 특혜와 지원을 제공한 사실이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에서 확인됐다.

◇DJ, 금강산 관광요금까지 챙겼다=금강산 관광사업을 주도했던 현대그룹의 전직 고위 관계자는 “금강산 관광선이 처음 출항하기 직전인 1998년 말 DJ가 청와대에서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을 면담했다”며 “이 자리에서 金대통령은 대북사업 승인서를 전달하고 관광요금을 1천달러 이하로 책정할 것을 주문했다”고 주장했다.

현대는 원래 북한 측에 낼 금강산 입산료 등 원가를 따져 관광요금을 한 사람당 1천5백달러(3박4일) 이상으로 책정했다. 1인당 2백7만원(당시 환율 달러당 1천3백80원 기준)을 받아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金대통령의 이 같은 지시로 현대는 당초 계획보다 77만원 적은 1백30만원선에서 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金대통령은 당시 현대가 손해를 보더라도 대북사업의 원활한 추진과 이산가족들이 더 많이 북한에 갈 수 있도록 가격을 내려달라고 주문했다”며 “현대 측은 그 대가로 금강산 관광선 안에다 면세점과 카지노 사업을 허가해줄 것을 요구했었다”고 덧붙였다.

현대상선 관계자도 “손해가 뻔한 요금 결정에 대해 당시 내부의 반발이 컸다”며 “金대통령이 향후 면세점과 카지노 사업권을 내줄 것이라는 귀띔이 있어 이를 수용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 측은 면세점과 카지노 사업 허가를 받지 못한 채 적자만 보게 됐다. 결국 현대상선은 2001년 말 대북사업에서 손을 떼고 현대아산이 이어받았다.

현대는 금강산 관광사업과 관련해 현재까지 총 7천6백억원의 누적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청와대 개입으로 자구노력 모면했나=청와대는 현대그룹이 자금난에 시달리던 2000년 4월 대규모 자구노력이 필요하다는 금융감독위원회의 요구를 묵살하고, 대통령에 대한 직보를 막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현대는 결과적으로 대우와 같은 엄격한 구조조정 조치를 피할 수 있었던 것으로 지적된다.

현대 측은 당시 청와대를 앞세워 자구노력보다 정부의 선(先)지원을 요구해 당시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 등 경제관료들과 잦은 마찰을 빚은 것으로 밝혀졌다.

익명을 요구한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이익치 회장이 툭하면 청와대 관계자를 찾아 경제팀이 현대를 지나치게 빡빡하게 압박한다고 하소연했고 이를 주로 이기호 경제수석이 DJ에게 전달하면서 이기호 수석과 경제관료들 간에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용근 당시 금감위원장은 최근 중앙일보 특별취재팀과 만나 “내가 경질된 것은 현대 때문”이라며 “당시 이기호 수석은 현대 측과 깊은 교감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이헌재 재경부 장관과 나는 현대를 엄정히 처리해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고 대통령에게 그런 내용을 보고하기 위해 날짜를 좀 잡아달라고 하면 이기호 경제수석이 미적거렸다”며 “(현대문제의 처리를)더 미뤄선 안되겠다 싶어 경제수석을 안 거치고 대통령 면담을 신청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李전위원장이 보고하려던 내용은 현대투신·건설의 자금난과 관련, 현대해상의 광화문 사옥 매각·현대 계동사옥 매각·삼성동 빌딩 매각 등 부동산 처분과 비상장 주식 출연 등 강도 높은 자구노력이 포함됐었다.

李전위원장은 “한번은 보고하러 청와대로 들어가는 도중 모처에서 ‘오늘 보고에서 현대는 빼라’는 연락이 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기호 경제노동복지특보(당시 경제수석)는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이용근 전 금감위원장과는 이런 일로 논의를 한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李특보는 또 “대통령의 장관 면담 일정은 청와대 의전실에서 담당하지 경제수석실을 거치지 않는다”며 “경제수석이 장관의 대통령 면담을 이래라저래라 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시래.이정재 기자 <sr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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