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학업성취도 평가 폐지 후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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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박남기
광주교육대 교수

지난 23일 초등학교 학업성취도 평가를 폐지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한 비판은 과도한 시험부담, 교육기관 간의 과다한 경쟁, 체력·인성·창의성 교육 소홀 등이었다. 또 다른 비판은 학교와 교사뿐만 아니라 학부모·교육청·교육부가 함께 성취도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데 학교와 교사만 지게 해 결과적으로 교육현장을 왜곡시켰다는 것이다. 평가만 폐지한다고 해서 제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평가 폐지 이후 나타날 현상을 예측해 교육책무성 확보 방안을 정밀하게 마련해야 할 것이다.

 첫째, 교육부·교육청·교사·학부모가 협력해 체력·인성·기초학습력 등 다양한 분야의 발달과정과 성취도 결과를 종합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보다 과학적인 지표와 측정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시·도교육청 차원의 기초학력보장 정책 정도로는 곤란하다. 기초정보 없이 교육정책의 방향을 수립할 경우 비효율적이고 비효과적인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둘째, 교육부는 단위학교의 성과에까지 직접적으로 관여할 것이 아니라 각 지방교육자치단체의 선택권을 인정해줘야 한다. 그 결과에 대해 지역민이 자치단체에 직접 책임을 묻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역 교육청의 책무성 확보 시스템이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이를 조사해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고, 결과에 따라 지역과 학교의 조직역량 개선을 위해 추가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다양한 분야에 대한 측정이 이미 기술적으로 가능한 상황이므로 각 교육청은 과거와 달리 더욱 섬세한 개별적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학교·교사의 전문성에 의존한 책무성 확보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학교가 있고 학부모도 원한다면 개별 기준을 마련해 시범적으로 허용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

 넷째, 학교와 교사 스스로 전문적이고 자율적인 책무성 확보를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학교를 포함한 모든 공공기관은 자신의 업무수행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성취도 평가를 대신해서 교육 성과를 입증할 자율적이고 체계적인 자료를 만들어 학부모와 사회에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문가 집단의 자율적 통제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형성되어 외부의 불합리한 통제가 다시 가해지지 않게 될 것이다.

 다섯째, 학생들의 학습동기 부여와 관련한 문제다. 시험의 중압감이 아니라 배움의 기쁨 속에서 스스로를 성장시키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의 전문성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빌 게이츠뿐만 아니라 노벨상 수상자들도 강조했듯이, 창의성은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에서 나온다. 진득하게 앉아 책을 읽고 열심히 탐구하는 자세는 어려서부터 길러져야 할 소중한 습관이다. 공부가 전부는 아니지만 기초학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어떤 분야에서도 자아실현이 어렵다. 초등학교 단계에서 평생을 가져갈 아름다운 학습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학교와 학부모는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육계뿐만 아니라 재계·시민사회·정부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서로 책임은 지지 않고 비판만 하는 데에서 벗어나 모두가 새로운 책무성 확보 시스템 구축에 참여해야 한다. 각 집단의 참여와 헌신을 유도하고 있는 미국 노스다코타주의 라운드 테이블은 우리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 벤치마킹해볼 만한 사례다.

 학업성취도 평가 폐지가 새로운 문제의 시작이 될지,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이 될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만일 우리가 당면과제 해결에 동참하지 않은 채 비판만 하고 있다면 우리는 문제를 일으킨 사람에 속한다.

박남기 광주교육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