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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이번엔 거짓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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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중 외교 핫라인 개설 윤병세 외교부 장관(왼쪽)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24일 오후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회담에 앞서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한?중은 이날 양국 간 외교 핫라인을 개설하기로 합의했다. [신화=뉴시스]
아베

일본 아베 정권이 한국과 중국에 대해 사실상 외교 전면전을 선포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4일 일본 각료들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한국과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데 대해 “우리 각료들은 어떤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한국과 중국에 대해 ‘오도카시(脅かし·협박, 위협)’란 극단적인 표현을 쓰면서 정면으로 맞불을 놓은 셈이다. ‘협박’이란 말을 하면서는 왼쪽 손을 들어 비스듬히 내려치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그가 “(각료들은) 협박에 굴하지 않을 자유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할 때는 장내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아베는 이날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국을 지칭하며 “야스쿠니에 대해 항의를 시작한 것은 노무현(정권) 시대에 현저해졌다. 김대중 정권 때 조금 있긴 했지만, 그 이전은 거의 없었다. 왜 갑자기 태도가 변했는지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베의 이 같은 발언은 한국 정부가 국내 정치적 목적 때문에 야스쿠니 문제를 악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아베의 주장은 사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일본 현직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첫 공식 참배를 선언한 1985년 8월 15일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 이후 2001년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때까지 16년 동안 96년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의 한 차례를 빼고는 전무했다. 그나마 자신의 생일날(7월 29일) ‘사적 참배’라며 갔다. 부총리와 외상이 이 기간 중 참배한 사례 또한 두 차례에 불과하다.

 한국 정부 또한 85년 나카소네의 야스쿠니 참배를 이원경 당시 외교부 장관이 정식으로 문제 삼았다. 96년의 하시모토 참배 때는 외무부에서 공식 유감논평까지 냈다.

 한국 정부의 한 당국자는 “안 갔을 때는 (문제제기) 안 하고 가니까 문제제기를 한 것인데, ‘옛날에는 하지 않다 왜 최근 들어 그러느냐’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아베는 이날 중국에 대해서도 “A급 전범이 합사됐을 때(78년) 당시 총리(후쿠다 다케오)의 참배에 항의하지 않고 어느 날 돌연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역사와 전통 위에 서 있는 우리들의 긍지를 지키는 것도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며 “그걸 깎으면 한국·중국과의 관계가 잘될 것이란 생각은 틀리다”고 주장했다.

 21일 야스쿠니를 참배한 장본인들도 아베를 옹호하며 거세게 한국을 비난하고 나섰다. 아소 다로(麻生太<90CE>) 부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전 세계에서 조국을 위해 고귀한 목숨을 던진 영령에 정부가 최고의 영예를 표하며 명복을 비는 걸 금지하고 있는 국가는 없다”고 주장했다.

 자민당 3역인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정조회장은 이날 강연에 나와 “예컨대 식민지 정책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를 따지자면 프랑스·미국·영국·네덜란드는 어땠는가”라며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일본의 각료가 가면 헌화를 하는데 그렇다면 베트남 전쟁이 올바른 것이었다는 말인가”라고 주장했다.

 식민지 지배를 한 미국 등은 비판받지 않고 일본이 비난받는 데 대한 반론이다. 또한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와 전사자가 묻혀 있는 알링턴 묘지를 동일시한 주장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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