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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 팔고, 커피 내리고 … 신의 뜻은 어디에나 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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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감리교 이진용 목사는 경남 합천 시골에서 8년째 목회를 한다. “교회가 지역민들의 삶에 뿌리내릴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한다”는 소신에서다. 자신이 운영하는 초콜릿 카페 안의 이 목사. [송봉근 기자]

감리교 이진용(41) 목사는 고소한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 그의 아내 이수진(40)씨는 달콤한 초콜릿을 만드는 쇼콜라티에(chocolatier)다. 부부는 2년 전 나란히 자격증을 땄다. 혀의 쾌감이나 차 한 잔의 여유를 찾겠다는 낭만적인 생각에서가 아니다. 녹록하지 않은 현실에 무릎 꿇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이 목사 가족은 2006년 서울 생활을 청산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경남 합천군 초계리로 무작정 내려왔다. 합천군은 전국에서 기독교 신자 비율이 낮은 지역 중 하나다. 4만 명 군민 중 크리스천은 1000여 명에 불과하다. 이 목사는 “문화적 낙후는 더 심각해 보였다”고 했다. 대통령을 배출한 보수 성향은 완강한 지역 텃세로 나타났다. 먹고 살기 바쁜 농촌 형편상 문화생활은 사치였다.

 그래서 부부는 자격증을 땄다. 합천군 유일의 초콜릿 카페 ‘도토리의 꿈’을 2010년 가을 문 열었다. 이 목사는 “지역에 소통의 빨대를 꽂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지난 8일 카페를 찾았다. 목사들 사이에 농촌은 대표적인 기피 지역이다. 사례비(월급) 챙기기 어려운 곳도 많다. 이 목사는 왜 거꾸로 간 것일까.

 카페는 번듯한 2층 건물의 1층에 있다. 서너 평 남짓한 크기다. 이 목사는 “주일에는 목회 장소로 사용한다”고 했다. 초계중앙교회다. 1층의 남은 공간은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공부방과 도서관, 2층은 아내 이씨의 초콜릿 공방과 목사 가족 거주 공간으로 쓴다.

 이 목사는 “어른 4명, 아이들까지 치면 전체 25명이 우리 교회 신자의 전부”라고 소개했다.

중간에 ‘이념 갈등’으로 신자가 ‘대거’ 이탈했다고는 하지만 8년 목회 성적표로는 초라하다. 이 목사는 “1년 헌금 수입이 140만원쯤”이라고 했다.

 목사의 교회는 어떻게 굴러가는 걸까. 정작 목사는 태평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시편 81장 성경 구절을 언급했다. 하나님 뜻대로 자신이 할 일을 하면 부족한 건 어떻게든 채워주신다는 믿음이었다.

 이 목사는 “교회 살림을 위해 고물을 수집한다”고 했다. 대학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했던 일이라 낯설지 않다. 새벽기도 끝나고 동네를 한 바퀴 돌거나 지역 주민이 고물이 생겼다고 연락해 오면 달려간다. 다른 목사들이 쉬는 월요일이 이 목사에겐 고물 파는 날이다. 한 달 150만원을 번다. 바리스타는 부업인 셈이다.

 얘기를 들을수록 이 목사의 목회는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맞추는 상식과 거리가 멀었다. 지역 청소년 30명에게 매월 120만원 정도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었다. 8년째 독거노인 가정을 방문해 전구 등을 갈아주는 봉사도 한다. 옥상달빛·하찌 등 서울에서 활동하는 가수들을 불러 인디밴드 페스티벌도 다섯 차례나 열었다. 모두 돈 드는 일이다. “그런데도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라고 했다.

  주민들의 마음을 여는 데는 공부방·도서관의 효력이 컸다. 많은 아이들을 서울·부산 등 대처(大處)의 대학에 진학시켰다. 지역 소재 대학에 만족하곤 하던 이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이 정점을 찍었던 1990년대 초반 신학대를 다녔어요. 교회가 더 이상 청소년들에게 매력적인 문화공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80년대 학번 선배들은 거리 투쟁에 매달리던 시절이죠.”

 이 목사는 경희대 91학번이었다. 2학년 여름방학 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학교를 그만두고 93년에 감신대에 입학했다. “교회의 새로운 사회 참여 방식은 문화를 통해야 한다”는 게 이 목사의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해외 선교를 나가려 했지만 문화적으로 피폐한 지역을 살리고 건전한 목회 활동을 하는데 굳이 해외여야 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농촌을 선택한 이유다.

 이 목사는 “교회 신자는 아니지만 합천군에서 내 뜻에 공감하는 이가 1000명쯤 된다”고 했다. 교회의 각종 문화사업에 경제적·심적 도움을 주는 이들이다.

 “지역에 가장 필요한 일을 교회가 감당해 사람들의 삶에 뿌리내려야 합니다.” 이 목사의 또 다른 얼굴은 문화기획자였다.

합천=신준봉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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