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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 스타] 영화배우 정진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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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스님에 이어 이번엔 형사다. 판이하게 다른 역할이지만 임무는 어찌 보면 닮았다.

평화롭던 절을 점거한 조폭들을 내쫓는 스님에서 무고한 시민의 뒤통수를 치는 퍽치기범들을 쫓는 형사로 변신했다. 정통 형사물 '와일드 카드'(감독 김유진)에 출연 중인 영화배우 정진영(39)을 지난달 29일 밤 경기도 양수리 종합촬영소에서 만났다.

툭 치면 얼어붙은 코끝이 부서져내릴 것 같은 영하의 날씨에도 그는 촬영장을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녹화하는 이틀을 제외하면 자신의 촬영분이 없더라도 촬영장에서 먹고 잔다.

이날도 그는 며칠째 대기 중이었다. 단란주점에서 퍽치기 살인이 난 뒤 현장 감식 장면을 찍어야 하는데 앞 촬영분이 자꾸 밀린 탓이다. 그래도 초조하거나 지루해 하는 인상이 아니다. '비천무'(2000년)를 찍을 때 중국에서 사왔다는 사과향 나는 차를 끓여준 뒤 기자에게도 "빨리 살인이 나야 제 걸 찍을텐데, 잘 안 죽네요"라는 농담을 던진다.

주지스님 옆에서 안달복달하던 청명 스님 역을 맡았던 '달마야 놀자'때도 그는 절에서 두달이 넘게 살았다. 철저한 준비, 노력파, 성실함…. 항상 정진영의 이름 앞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다.

"이 영화도 책(시나리오) 받자마자 지방에 있는 암자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공부는 많이 못했어요. 전 뭐든지 일이 떨어지면 사전에 굉장히 연구하는 편이에요. 영화라는 게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노력이 들어가는 것이고 또 관객들의 돈과 시간을 뺏는 건데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건 도덕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죠."

표현이 희한하다 싶을 정도로 재미나다. 대본을 '책'이라고 부르고 대본 분석을 '공부'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지만 '도덕적으로'라는 말이 나오니 생경하기까지 하다.

이번 영화는 '약속'(1998년)에서 그를 발탁했던 김유진 감독과 두번째로 하는 작품이다. 그가 맡은 오영달 역은 강력반 경력 10년의 베테랑 형사. 아홉살 차이나는 초년병 파트너 방제수(양동근)와 단짝으로 연쇄 퍽치기 사건을 수사한다.

지금까지 맡은 역 중 가장 터프하다. 취조를 위해선 국밥을 먹고 있는 피의자의 숟가락을 발로 걷어차며 "너같은 새끼가 무슨 밥이야!"라고 닦아세운다. 그렇다고 인간미가 없으랴,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를 흥얼거리고 딸만 보면 흐뭇해 한다.

"감독님 말씀을 빌리자면, 젊은이들이 보고 나도 저런 멋진 형사가 되고 싶다며 선망할 영화가 될 것 같아요. 영화 초반에는 '저게 형사야 깡패야' 할 정도로 세게 밀어붙이지만, 결국에는 형사들의 땀과 집념을 이해할 수 있는 영화 말이죠."

낯을 심하게 가리기로 유명한 양동근과 어떻게 사귀었는지 궁금했다. 둘은 15년이나 나이 차이가 난다.

"15년이면 친구죠 뭐. 동근이는 워낙 착한 놈인 데다 에너지 덩어리에 재능 덩어리예요. 몇 개월을 부대끼다 보니 영화 속 오형사와 방형사의 관계처럼 돼가는 거 같아요."

흥행이 안돼 묻히다시피 한 '교도소 월드컵'(2001년)을 빼면 '와일드 카드'는 사실상 그의 첫 주연작이다. 첫 주연작에 대한 부담감은? 그는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전 지금까지 해온 역할도 그랬고, 타고난 기질상 수비수가 적성에 맞아요. 오형사도 방형사에게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네요."

최선의 공격은 방어? 그의 지론이 얼마나 설득력을 갖는지는 올 4월 '와일드 카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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