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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적인 증오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최근의 유괴살인 사건은 「무조건 사형」도 가능한 특별법의 제정까지 서두르게 하고 있다. 그 만큼 「쇼크」가 컸던 탓이다. 미성년자의 약취나 유인을 「10년 이하」로 규정한 현행형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싱겁다. 사회의 공분을 「10년 이하」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 특별법의 제정은 바로 그것에서 발상 한 것이다.
그러나 살인범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잠시 식힐 필요가 있다. 그의 정상을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눈을 찌른 자는 눈을 찔러 주라』는 응보형은 사회의 범죄를 다스리는 절대율은 될 수 없다. 그런 윤리로 치면 유사이래 피살자와 자형자의 수는 같았어야 할 것이다. 살인범의 수법이 흉악해질수록 처벌도 그와 정비례해서 잔학해져야 할 것이다. 살인범의 흉악도가 일률적이라는 법은 없다. 따라서 특별법도 흉악도에 따라 수없이 제정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하기 쉽다.
「무조건 사형」의 원시적인 증오감을 가미한 특별법의 제정은 너무 감상적이다.
「E·M·뭉게나스트」는 1928년 「살인범과 국가」라는 「테마」로 세계의 명사들에게 「앙케트」를 낸 적이 있었다. 사형은 근대문화 국가의 기반과 요구에 합치되는가. 당신은 사형의 교육적 효과를 믿는가?
「헤르만·헤세」는 한마디로 부정했다. 「로망·롤랑」은 『사형, 즉 일종의 살인은 우리 시대의 크나큰 착오이다. 아니 그것은 다음 범죄의 도화선이기도 하다.』 「버나드·쇼」는 『해충 같은 인간을 호랑이나 독사나 이처럼 처벌하는 것은 당치도 않은 얘기다. 그러나 이를 내버려 두는 것도 당치않다.』
살인마를 없애기 위해 지금 한국에서도 사형제를 폐지하라는 주장을 시작하려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의 배신」, 「의사의 상인화」, 「교사의 영리화」, 「운전사의 폭도화」, 「살인 오락의 문화」 등등 사회도덕과 가치의 전체적인 붕괴는 그럼 어떤 특별법으로 다루겠는가. 싱거운 형법은 보강으로도 능히 가능하다. 내부에서 몰락해 가는 사회의 골격을 바로잡는 「특별도덕」이 이제 우리에겐 가장 절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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