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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섬 처녀는 서글퍼|서산 거아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섬 처녀들은 뭍으로 시집갈 날을 꿈꾸며 자란다. 어른들이 바다로 나가면 섬 처녀들은 엄마를 따라 밭에 김매러 간다.
호미를 놀리면서 생각하는 것은 섬을 벗어나는 꿈이다.
그래서 이 섬엔 나이 찬 처녀가 드물다. 19살쯤 되고 용모가 웬만하면 어버이들은 서둘러 육지 사람과 사돈을 맺는다. 뱃길로 5시간쯤 떨어진 육지 사람들은 섬에서 온갖 어려움을 다 겪으며 자란 섬 처녀를 맏며느리 감으로 환영한다. 시부모 공경 잘하고 일 잘하고 웬만한 육지의 가난은 섬의 부잣집 생활보다 떨어지지 않는다고 만족하는 성품이 있다는 것.
섬 처녀들이 자라면 육지로 빠져 나가는 바람에 섬 총각들은 한숨이 많다.
아내로 맞을 상대가 줄어들기 때문. 더욱 육지 처녀들은 꿈엔들 섬으로 시집 올 생각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섬에는 조혼의 풍습이 뿌리깊이 남아있다. 13·14세쯤 되면 미리 사돈을 맺는다. 예약제도다. 그러나 요즘엔 이것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맺었던 사돈도 처녀들이 자라나면 깨지기 일쑤. 섬 총각은 타의에 의해 사랑할 뻔하다가 자기 의사와는 관계없이 실연(?)을 맛본다. 섬 처녀의 변심, 자기 권리의 주장은 보는 게 없어도 듣는 것이 많은데 크게 힘입고 있다. 밀어 닥치는 전파의 힘이다.
몇년 전에 있었던 낙도에 「라디오」보내기 운동으로 이 섬에도 10대의 「라디오」가 들어왔다. 숨막히는 장면이 연속되는 방송극, 구성진 유행가 「신데렐라」가 될 것만 같은 CM의 황홀한 목소리가 꿈을 한층 부풀게 했다.
최동아(15) 성아(13) 두 자매는 육지엘 가보지 못했지만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가를 그려본다했다. 육지에 갈 수만 있다면 뭣을 해도 즐겁겠다 했다. 아직 뚜렷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이 섬을 벗어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했다.
얼마나 말리면 그때는 혼자라도 육지에 갈 수 있다면서 얼굴을 붉혔다.
자매는 호미를 놀리면서 입버릇이 된 노래를 불렀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바다를 원망하는 섬 처녀들은 육지를 낙원인양 꿈꾸고 있다. <김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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