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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세상탐사] 어느 날 문득 당신의 욕망이 위험해진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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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10일은 토요일이었다. 40대 여성 Y는 이날 오후 2시 서울동부지검에 들어갔다.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훔친 혐의로 소환 통보를 받은 터였다. 검사실엔 검사 전모(31)씨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몇 시간 후 전씨와 Y 사이에 유사 성행위와 성관계가 있었다. 이틀 뒤인 12일 밤 전씨는 지하철 2호선 구의역 1번 출구 앞에서 Y를 차에 태웠고 모텔에서 다시 성관계를 가졌다.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조용현)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이틀간 이뤄진 성행위를 뇌물로 보고 전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성행위나 유사 성행위를 통해 성적(性的) 이익을 주고받는 것도 뇌물죄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뇌물의 내용인 이익이라 함은 금전, 물품 기타의 재산적 이익뿐만 아니라 사람의 수요·욕망을 충족시키기에 족한 일체의 유형·무형의 이익을 포함하는 것이므로, 뇌물이 반드시 경제적 가치가 있거나 금전적 이익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에 한정된다고 볼 수 없다.”

 재판 과정에서 전씨와 변호인이 “현행 형법의 해석상 ‘뇌물’은 금품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가액을 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개인 간의 성행위도 뇌물이라고?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당수 법조인은 “가능한 법리”라고 답했다.

 “정조도 뇌물이 될 수 있다. 사법시험에 형법 문제로 출제된 적이 있어요. 다만 성행위도 객관적 가치를 따질 수 있어야 뇌물이란 시각과, 가치를 따지지 못해도 뇌물이 된다는 시각으로 학설이 나뉩니다. 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뇌물이 아니라는 논거를 대기가 쉽지 않다는 쪽입니다.”(판사 출신 변호사)

 실제로 비슷한 하급심 판결이 몇 건 있었다. 이에 대해 류여해 사법교육원 교수는 “객관적 가치를 가늠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성매매가 법적으로 허용된 독일에선 성을 뇌물로 보지만 성매매가 금지된 한국에서도 성을 뇌물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된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생각해보자. 고위 공직자가 인기 가수에게 돈을 주지 않고 노래를 듣거나 유명 작가의 글을 받아도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 인정된다면 뇌물로 처벌할 수 있게 된다. 가수의 노래와 작가의 글 역시 ‘사람의 수요·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무형의 이익’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값어치를 따지기도 성행위보다 훨씬 쉽다. 방송사 등에서 받는 출연료나 행사비, 출판사·잡지사에서 받는 원고료를 토대로 그 객관적 가치를 산출할 수 있다. 또 하나, 무형의 뇌물이 무서운 것은 반환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돈봉투는 받았다가 “돈이 들었는지 알지 못했다”며 돌려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성행위는 일단 주고받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한 검사는 “유형의 뇌물은 돌려줄 수라도 있지만 성행위나 노래 같은 무형의 뇌물은 돌려줄 수가 없다”며 “앞으로 자신의 직무와 관련 있는 이성과 성관계를 갖는 공무원은 꼼짝없이 뇌물수수로 사법처리될 위험성이 있다”고 했다.

 자, 이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것이다. 대법원에서 ‘성행위=뇌물’ 판례가 나온다면 공직사회의 청렴 기준은 놀랄 만큼 엄격해지지 않을까. 공직자들은 그간 관행적으로 누려온 무형의 이익들을 놓고 전전긍긍하지 않을까. 개인적 욕망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을까. 물론 속단하기는 이르다. 18일 전씨와 검찰은 각각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실형을 선고받은 전씨 측은 항소심에서 더욱 강도 높게 무죄를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2의 변수는 Y다. 그동안 “뇌물을 준 것이 아니라 성폭행을 당한 것”이라고 주장해온 Y의 변호인 정철승 변호사는 “잘못된 팩트(사실)에 의한 판결”이라고 반박한다. 정 변호사는 전화 통화에서 “사건의 본질은 검사가 지위를 이용해 여성 피의자의 저항을 제압하고 성폭행한 것”이라며 “Y가 기소되진 않았지만 자신의 입장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판결로 성 뇌물의 공여자로 사회적 낙인을 찍히게 됐다”고 말했다. 만일 Y가 “진실을 되찾고 싶다”며 항소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다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과연 결론은 어떻게 내려질 것인가. 나는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검찰 개혁을 촉발시켰던 이 사건이 한국 뇌물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될지, 공직사회에 어떤 변화를 몰고올지 하회(下回)를 지켜보고자 한다.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 sc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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