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 김도연 박사의 영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오늘 우리는 고상산 김도연 박사의 영구를 유족과 친지, 그리고 사회유지의 손으로 땅에 묻는다.
『국난 중에 생하셨고 국난 중에 장하여 국난 중에 노하셨다』는 것이 생전에 고인을 흠모하던 어느 친지의 회한이었다 하거니와, 참으로 그는 겨레가 처한 미증유의 국난 중에 몰하여, 다시 한번 뜻 있는 국민으로 하여금 호곡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고 김 박사에 대한 추모는 단순히 훌륭했던 한 노 정객에 대한 인간적인 애상 때문에 만이 아니다. 또 그것은 해방이후, 그와 더불어 이 나라에 처음으로 싹텄던 반공·민주의 첫 민주주의 정당이었던 구 한민당의 정통이 그의 장서와 함께 실질적으로 종언을 고하고, 파란 많던 이 나라 보수정당의 역사에 새로운 국면의 전개가 필연적으로 요구되게 되었다는 점만에서도 그런 것이 아니다. 그의 죽음은 이 나라에 정말 희귀했던 폴리티시언 아닌, 진정한 스테이츠맨의 행태에 대하여 새삼스럽고 국민의 심금을 울리는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의 기구했던 우리정치사를 일관하여 고 김 박사의 이름은 항상 민중과 더불어 울고 웃는 반공·반독재·민주·민권 투쟁의 최선두에 서 있었다. 청년기의 학창시절이래 이미 조국광복운동에 큰 뜻을 두고 몇 차례의 옥고를 치른 그의 생애는 어쩌면 그때부터 결코 순탄치 못할 이 나라 정치인으로서의 운명을 스스로 짊어지고 나선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는 일국의 정사를 주름잡는 위치에 있던 정치인으로서 호기와 영화를 탐내는 대신, 하고많은 세월들을 한결같이 민중의 편에 서서 고난에 찬 형극의 길을 걸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MS 항상 웃음과 관용과 후덕을 잃지 않고 자부와 같은 온·엄이 겸전한 인품으로 우리 정계를 이끌어 왔던 것이다.
오직 당리·당략과 목전의 소리에 사로잡혀 우왕좌왕을 일삼으며, 입으로는 온갖 미려한 구호와 선전을 일삼으면서 실은 추잡하기 짝이 없는 정쟁에 여념이 없던 이 나라 대다수의 정치인들과 그러한 저이풍토 속에서, 고 김 박사의 존재는 그야말로 군계일학이었다 하여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동경 유학시에 대한독립당을 조직하여 2·8독립선언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이래,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인한 두번째 투옥 8·15해방 후 죽음의 인문에 이르기까지 일관해서 견지한 민주주의에 대한 굳은 신념과 이를 위한 수화를 불사하는 투쟁, 그리고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관용과 후덕으로써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야 말았던 그의 인품 등은 그의 청렴하고 검소한 생전의생활태도와 더불어 이 땅의 모든 정치인들에게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교훈을 남기고야 말 것이다.
오늘 우리는 고인과 영결을 고하는 마당에서 어떤 의미로는 매우 불우했던 이 땅의 한 원로정치가의 죽음을 애도하고 두손 모아 그 명복을 비는 동시에, 황막한 이 나라 정치풍토 속에 그가 남기고 간 위대한 스테이츠맨쉽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보고자 하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