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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정보부장 담화내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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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①이번 대남 적화공작단 사건을 둘러싼 한·독 관계에는 독일 영토 안에 있는 본 건 피의자 또는 증인들을 데려온 데 대하여 다소의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 사건의 수사는 사건의 규모나 성격에 비추어 고도의 보안성과 신속성이 요청되었으며 보안 누설 등을 고려하여 관계관의 권고와 종용에 의한 자의귀국을 취하였다. 본인은 이 사건 자체가 독일이나 한국의 안전에 심히 유해로운 것이며, 따라서 양국의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칠 한국인 공산간첩에 대한 수사에 있어서 서독정부와의 사전 협조 없이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된데 대하여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나 한국의 진의를 해명하고 사건 내용에 관해 통보도 하였으므로 승공이라는 차원에서 독일의 이해를 얻게될 것으로 본다.
②동백림을 거점으로 한 북괴 대남공작단이 1958년부터 간첩활동을 하였는데 이제야 적발해냈다는 점과 공산무장간첩의 발악상 운운에 대하여, 본 사건의 주동인물과 이들에 포섭된 자의 대부분은 구 자유당 또는 구 민주당 정권 당시에 출국하였으며 1957년부터 활동을 벌여왔다.
정부는 제3공화국 수립 후 해외 유학생과 기타 장기 해외 체류자에 대한 사상 선도와 보안조치를 취하기 시작하였으며 해외진출의 증가와 더불어 출국자의 보안교육은 물론 사상선도를 위한 각종 홍보사업 등 예산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다각적인 사업을 하여 선도에 힘썼다.
사실상 외국에서의 이들의 사상 동향에 관한 파악은 대공활동의 만전을 기할 수 있는 예산의 부족, 해외활동의 제약 등 여러 가지 사건으로 말미암아 현재까지 만족할 수 있는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노력으로 이 사건의 단서를 포착하고 본격적이고 장기적인 수사활동으로 이번에 결말을 본 것이다.
③모 여인 운운과 황성모에 관해서, 김옥희는 1966년 3월 7일자로 청와대 경호실 직원으로 경호실 이승욱의 보증으로 취직하였다. 김옥희는 1963년 12월 파리 유학중인 조영수와 결혼하였으며 조영수의 포섭으로 간첩활동을 하였다.
김옥희는 의학박사 김형익씨(공화당원이며 후생일보 사장)의 차녀이며 또한 국회도서관의 직원이었던 이순자는 전 민의원 이갑식씨(신민당 소속)의 딸이며 가정성분상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신분인데도 그들의 간계에 말려 들어갔다.
황성모의 공화당 조직 참여 운운관계는 공화당의 정강정책의 이론적인 토의와 구현을 위해서 각계의 인사들로부터 자문을 받을 당시 황성모도 이에 참여하였다.
그런데 황성모는 토의과정에서 사회민주주의적 사상에 집착하고 있음이 드러났으며 이는 공화당의 지향하는 이념과 상치되므로 황성모의 참여를 그만두게 하였었다.
그 후 황은 자신의 사회주의 이념에 공명하는 당시의 서울대 문리대생 현승일, 이종률, 박범진 등 20여명을 규합하여 문리대 내에 합법을 가장한 학생「서클」인 민족주의비교연구회라는 단체를 창립하여 사회주의 기반의 구축으로 학계내의 조직확대를 획책하였으며 혁신적인 사회주의체제로 변혁하기 위한 제1단계 전술로서 국제 공산주의자들과 북괴의 투쟁구호인 반식민, 반보수, 반매변 등을 내세워 북괴가 지령하는 공작사령을 수행하였으며 또한 김중태 등과 밀의하여 「민비」를 모체로 서울시내 각 대학교 학생을 망라하여 한·일 회담 반대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배후에서 64년 3월 24일 5월 20일, 6·3 「데모」를 조종,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시켜 정부 전복을 기획, 적화통일의 성취를 위하여 주력하여 온 것이다.
④옥석구분의 과오 운운하며 또는 이번 사건을 성급한 체포 운운하는 것은 이번 사건이 얼마나 장기간의 사전내사와 치밀한 계획 하에 다루어졌으며 그 증거를 사전에 포착하는데 얼마나 많은 난점이 있었는지 전연 알지 못한데서 오는 경언이며 무책임한 성명이다. 이번 수사에서 무고한 자를 없게 하고 귀중한 인재를 아끼고 경미한 과오를 관용하는데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는 자랑하고싶다.
⑤수사중인 내용 공표 운운 및 신민당 중요 간부 김중태 부완혁 장준하씨 등에 대한 협박·강제연행·불법체포 운운하고있는데, 이미 발표한 바와 같이 금년에 접어 들어서의 북괴의 대남공작 양상은 급진적이며 전투적인 전술로 전환하였으며 후방 교란을 위해 무장간첩 약 800명을 양성하여 1월이래 계속 대량 침투시키고 있다.
북괴는 지하당 조직 및 각계각층의 포섭공작과 또한 무장간첩에 의한 위력공작의 이중 구조적인 전술로 나오고 있다.
이러한 북괴의 대남공작의 영엄한 현실에 처하여 당부는 이를 발표함으로써 국민의 경각심을 높이고 간첩으로 인한 피해를 감소코자 한 것이며 이는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명예에 앞선 국가공익에 입각한 것이다.
그리고 김중태에 대한 범죄사실은 이미 발표된 바와 같으며 부·장 양씨에 대해서는 수사상 필요에 따라 본인들의 출두를 요청한 것이며 이에 대해서는 본인들 자신이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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