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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낭만 - 김우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오랜만에 서울구경을 했다. 쓴잔(낙방)을 마신 나는 기분 좋게 멋진 「빌딩」사이를 허전한 마음을 한 채 걸어갔다. 친구와 가까운 가족들을 떠나 어처구니없는 실의의 가슴을 달래기 위해 나 혼자 방황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걷잡을 수 없는 심정에서 조용한 음악이라도 들어보려고 음악 감상실을 찾아 들어갔다.
○…처음으로 이런 곳을 들어서는 내 딴에는 제법 고상하고 시원한 낭만이라도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백조의 호수」가 「미완성」이 「운명」이 그리고 「겨울나그네」…. 그리고 밝고 유려한 불빛과 예술적인 운치와 은은한 음향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안개처럼 깔린 뽀얀 담배연기. 단발머리 소녀가 껌을 짹짹거리며 떠꺼머리 짝과 함께 앉아 거침없이 오가는 유치하고 속된 대화. 사치스런 대학생들. 고막이 터질 듯한 외국 유행음악. 멋없이 흔들며 까부는 젊은이들. 맛없고 냄새나는 「밀크」한잔. 남녀 함께 사용하는 화장실…. 나는 현기증을 느끼면서 밖으로 뛰쳐나와 버렸다. <김우경·21·인천시 화수동5·삼성장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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