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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나보다 스펙 낮은데 … 왜 얘가 뽑혔을까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구직 성공을 위해 꼭 챙겨야 했던 스펙(어학점수·학점 등), 자기소개서, 면접 준비 등 이른바 ‘채용 3종 세트’의 중요도가 낮아지고 있다. 회사마다 원하는 인재들을 골라 뽑는 맞춤형 채용 바람이 불면서다. ‘토익 900점, 학점 4.0’ 식의 모범생형 스펙보다 군인·창업자·중소기업 근무경험자 등 회사가 원하는 인재들이 더 각광받는다. 기업들도 ‘출신’보다 ‘재능과 끼’를 보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열린 채용이 몰고 온 변화의 바람이다.

 KT 채용접수 마지막 날이었던 15일,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 이현진(25)씨는 서류를 낼 필요가 없었다. 경쟁자들은 원서접수 마감시간인 오후 6시까지 자소서 한 문장, 한 문장을 다듬었지만, 이씨는 6일 KT 올레스퀘어에서 열린 KT 잡페어의 ‘5분 자기PR’에 합격해 서류전형을 면제받은 것. 이씨는 “평소 KT의 TV광고를 유심히 보고, 면접장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를 통해 고객 400명을 유치한 경험을 마케팅에 활용하겠다고 얘기한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KT의 자기 PR 전형에는 1000여 명이 몰렸고, KT는 이 가운데 80명을 뽑아 서류전형을 면제해줬다. 잡페어 행사장에서도 현장접수를 동시에 진행해 서류 면제자 20명을 추가로 뽑기도 했다. 면접관으로 참여한 김원석 KT 인재경영실 매니저는 “춤이나 노래 등 단순히 장기자랑을 통한 끼를 보기보다 본인의 역량을 5분이라는 한정된 시간 내에 진지하게 설명할 수 있는 지원자를 선발했다”고 말했다.

 SK도 ‘바이킹형 인재 전형’을 통해 오디션 형태의 지역 예선과 최종 결선을 거친 합격자를 인턴사원으로 선발한다. 실제 이들 기업의 자기PR 현장에서는 태블릿PC를 들고 열심히 설명하는 청년, 직접 작성한 브로마이드를 들고 와서 펼쳐 보이는 여학생, 때로는 춤을 추는 지원자도 볼 수 있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5분 자기PR을 온라인까지 확대했다. 온라인 2400여 명, 현장 1000여 명의 신청자 가운데 800여 명이 인사담당자 앞에서 자기PR을 했다. 입사지원서 기재 항목을 28개에서 20개로 줄여 부모 주소, 해외 연수뿐만 아니라 본인 사진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지원서에 적어낼 스펙을 만들기 위해 졸업 후 1년 넘게 해외에 나가는 건 사회적 낭비라고 판단했다” 고 말했다.

 한화그룹은 올 상반기 채용부터 인·적성검사를 10대 그룹과 대형 공기업 가운데 최초로 폐지했다. 수험생들 사이에서 최고 난도를 자랑했던 인·적성검사 대신 계열사별로 채용 재량권을 주기로 한 것이다. 한화그룹 조경회 인사팀 차장은 “직무역량 중심 선발을 강화하기 위해 계열사별로 자체 개발한 평가방식을 적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채용기간도 2.5개월에서 1.5개월 정도로 단축됐다. 한화는 이력서 항목도 줄였다. 가족사항에 부모 직장란을 없앴고 지원자의 종교와 주민등록번호란까지 삭제했다.

포스코는 특정 분야에서 성과를 올린 응시자들은 스펙과 관계없이 채용한다. 우선 발명이나 특허자격 보유자, 국내외 공모전 수상자들은 채용 전형에서 우대를 받는다. 벤처기업 등 창업 경험자, 문·이과 교차계열 복수전공 이수자, 한국사 관련 자격 소지자들도 가산점을 받는다.

 은행권도 ‘맞춤형 채용’에 동참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금융권에서는 처음으로 입사지원서에 스펙 항목을 없앴다. 그 대신 인문학적 소양·통섭 역량 등을 주요 평가항목으로 도입했다. 지난해 채용에는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 서적을 주제로 지원자와 면접관 사이 자유로운 토론도 실시했다. 올해에도 서류 전형 후 상식과 인문학적 소양에 대한 시험을 볼 예정이다. 기업은행은 채용 인원(210명)의 5% 정도를 중소기업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뽑는다. 조준희 IBK 기업은행장은 “중소기업 지원이 기업은행의 역할인 만큼 현장에서 중소기업 상황을 겪어본 인재가 필요하다”며 “이번 채용에서 성과가 좋으면 앞으로 더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롯데그룹은 올해 신입사원 1400명 가운데 여성인력을 최소 35% 채용한다. 또한 남녀 장교 출신 인재를 특별전형으로 우대할 계획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섬세함과 리더십을 모두 갖춘 여군 장교들에게는 고객접점·여성 특화분야를 우선 고려한 채용 기회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아웃도어 업체인 ㈜블랙야크는 지난 12일 1차 합격자 52명을 대상으로 산행면접을 실시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축령산 자연휴양림에서 텐트 설치부터 조별 미션 발표, 간단한 퀴즈 등의 과제로 지원자들의 태도와 조직 적응력을 평가했다. 블랙야크 김성호 부장은 “사무실 면접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체력과 리더십을 함께 산을 오르며 평가했다”며 “ 블랙야크가 추구하는 글로벌 인재 선발을 위해 산행면접을 실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카카오톡’으로 유명한 카카오는 ‘게임 잘하는 사람’을 최고의 인재로 평가한다. 게임사업부 경력 직원을 뽑으면서 ‘애니팡’과 ‘드래곤 플라이트’ 등 각종 게임 고득점자에게 가산점을 줬다. 팔도는 라면을 먹은 후 맛을 평가하고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시식면접’을 한다.

 채용전문가들은 “취준생들이 기업들의 채용 트렌드 변화를 제대로 읽고 그에 맞게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인크루트 서미영 상무는 “채용에 있어 스펙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무(全無)인 것도 아니다”며 “토익점수 900점인 취준생은 점수를 30~40점 더 올리는 데 힘쓰기보다 본인의 입사 희망기업이 원하는 ‘맞춤형 스펙’을 쌓는 게 효율적인 전략”이라고 조언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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