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위한 행위라도 목적이 수단 정당화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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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61) 한화그룹 회장은 15일 산소호흡기를 꽂은 상태에서 의료용 침대에 누운 채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했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이날 김 회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15일 오후 3시부터 서울고법 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 김승연(61) 한화그룹 회장은 의료용 침대에 실린 채 산소호흡기를 꽂고 출석했다. 재판장인 서울고법 형사7부 윤성원 부장판사가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자 김 회장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일부 무죄를 제외하고 판결 내용 대부분은 1심 판단과 같았다. 1시간20여 분 뒤 윤 부장판사는 주문을 읽었다. “피고인을 징역 3년, 벌금 51억원에 처한다.” 1심보다 형이 1년 줄어들긴 했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대기업 총수 재판에서 보였던 ‘집행유예 없는 실형’ 선고로 매듭지어졌다. 이어 윤 부장판사는 “칸트가 말했듯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 성공한 구조조정이더라도 과정이 위법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날 칸트의 경구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변호인단이 줄기차게 ‘성공한 구조조정’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데 대한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그룹 구조조정을 위한 행위였고 결과가 성공적이었다는 점이 인정된다”며 “그렇다 해도 그 과정에서 불법적 행위가 있었다면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 회장의 차명 소유 회사(한유통·웰롭·부평판지)에 대해 계열사들이 지급보증을 한 행위를 유죄로 판단했다.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던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계열사들은 합리적 평가 없이 경영기획실의 일방적 지시에 따라 부실 기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서 위험부담을 졌다”며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지급보증을 선 시점에서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핵심 쟁점이었던 차명 소유 회사 계열사의 부채를 계열사가 갚게 한 혐의에 대해서도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다만 계열사 피해액 중 3분의 2가량인 1186억원을 공탁했고, 배임 행위가 개인 착복 범죄가 아닌 점, 건강이 악화된 점 등을 고려해 1년을 감경했다. 김 회장은 한화그룹 계열사들을 동원해 부실 회사인 한유통 등을 부당 지원해 1664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 등으로 기소됐다.

 선고 직후 김 회장은 서울대병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지난해 8월 1심 선고와 함께 법정 구속된 그는 4개월간 수감생활을 하다가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나 치료를 받고 있다. 정지 기간은 5월 7일까지다.

 한화그룹 임직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김 회장의 건강상태가 극도로 나쁜 데다 배임죄 적용에 대한 논란도 제기돼 내심 집행유예를 기대했었기 때문이다.

 한화는 이날 “재판부의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재판부가 개인적 이익을 취한 게 없다고 인정하고도 배임죄를 인정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글=박진석·박민제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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