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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향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존슨」과 「코시긴」은 의외로 일요일에 제2차 회담을 갖는다. 막간에 발표된 「코뮤니케」만으로는 무대 뒤의 사정을 알 수 없다. 아직은 희망도, 실망도 아니다.
『며칠동안 가슴만 죄게 하고, 시원한 말을 많이 해드리지 못하는 것을 여러분은 노여워하지 말기 바랍니다.』 「코시긴」이 신문기자들에게 발표한 짧은 성명의 마지막 구절이다.
인구 겨우 1만5천뿐인 소도시 「글라스보로」에는 지금 7백 명의 대 기자들이 세계 각 국에서 몰려와 웅성거린다. 그들은 성명서에나 귀를 기울이며, 보도래야 두 수뇌의 안색을 살피는 정도에 그친다. 가령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회담을 마치고 나오는 두 지도자의 얼굴은 극히 만족스러워 보였다』는 식으로. 바늘 떨어지는 소리에도 저마다 깊은 의미를 담으려는 기자들의 심경은 알 만하다.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는 격이라고나 할까.
「코시긴」은 수선스럽지도 않고, 극적인 것에나 「제스처」에도 그리 능란하지 않다. 웃는 모습하며, 신중한 표정하며, 그저 착실한 사무가형이다. 그러나 「존슨」의 손을 잡으며 『첫 손자를 보셨다니 축하합니다』는 첫 인사를 나눈 것은 구수한 할아버지의 풍모도 보여준다.
중동의 전후문제, 요격「미사일」(ABM망) 배치와 핵확금 문제, 월남전 문제 등 인류의 존망을 의논하는 엄숙한 순간, 바로 그 앞에서 『나는 벌써 할아버지가 된 지 18년이 되었소이다』거니 『나도 당신처럼 할아버지가 되어가나 보구려』하는 대화를 두 거두가 주고받는 광경은 어딘지 흐뭇하다. 핵탄두「미사일」 속에서 5색 풍선이 터져 나온 기분이다. 아무리 「유무기론의 시대」일망정 그들이라고 인간의 풍모와 향기를 갖지 말란 법은 없다. 그들의 얼굴을 살벌한 인상으로 공포와 회의 속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세계의 상황은 어딘지 잘못되어 있다.
오늘의 세계는 동서남북 대립의 시대이다. 동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남북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독립투쟁의 대립, 미·소는 그 동서남북의 교차점에 서 있다. 그들의 마음이 진실한 빛일 때 인류는 행복의 여명을 보며, 그들의 마음이 비굴할 때 인류는 종언을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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