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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훔친 여름|「내가 훔친 여름」을 끝내고 - 김승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그랬을 리는 없겠지만 혹시 「내가 훔친 여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우선 그 분에게 머리를 깊이 숙여 감사 올린다.
이렇게 재미없는 소설은 쓴 내 자신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중앙일보사가 모처럼의 커다란 호의와 기대로서 마련해 준 지면을 나는 아무래도 개칠해 버린 것 같아 죄스러운 느낌을 견딜 수 없다.
호의와 기대를 배반하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시시한 변명은 해서 무엇하랴. 소설을 읽어보면 뻔한 것. 김 군, 의욕은 꽤 있었던 거 같은데 말야, 아니 굉장한 의욕을 가지고 시작했던 모양인데 말야, 그런데 어쩐지 전체로 봐서 엉성하지 않아? 얘기도 하다가 말고 하다가 말고 한 것 같고. 아, 알겠어 알겠다니까. 지방에 산재하는 열등분자들을 모두 끄집어 내보일 작정이었단 말이지? 그런데 그만 계산을 잘못해서 얘기를 절반도 못하고 허락 받은 지면을 다 써버렸단 말이지? 예끼 이 엉터리 소설가야 이렇게 재미없는 소설은 아예 싣지도 말았어야 하는 건데.
뭐, 장편으로 만들어 볼 작정이라고? 어느 출판사 하나 망하겠군. 신문소설이라는 제약, 어쩌구 저쩌구는 못하겠지? 이만큼 작품 위주로 지면을 잘라준 예는 없었으니까.
내 자신이 남의 입장이 되어 나를 비난해도 사실 할 말이 없다.
이번 중편 「내가 훔친 여름」이 실패작이란 딱지를 면하기 힘든 것은 오로지 작자의 역량부족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디 한 군데라도 혹시 이쁜 데가 있었다면 그건 오로지 중앙일보 측의 열의가 빚은 부분이란 걸 분명히 밝혀둔다. 특히 삽화를 맡아주신 문학진 교수님의 아름답고 정확한 붓 자국 덕분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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