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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미·소의 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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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공로는 「홋·라인」>
중동 열전을 종식시킨 공로자는 백악관과 「크렘린」간에 가설된 「홋·라인」(직통비상전화선)이다. 62년 「쿠바」위기 당시 정상외교 경로나 일반 통신 수단으로 양국의 정책성명과 반응을 탐지해야 했던 쓰라린 경험에서 63년 8월30일 마련된 이 「홋트라인」은 지금까지 기껏 신년「메시지」교환에 이용됐을 뿐이다. 5일 「이스라엘」의 전격작전으로 전쟁이 터지자 「코시긴」수상은 『소련은 이번 전쟁에 개입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미국이 개입하면 하는 수 없다』는 내용의 소련 입장을 암호로 보내왔다. 물론 「존슨」대통령의 대답도 개입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었다.
소련은 「이스라엘」을 침략자라고 호되게 비난하면서도 전쟁 기간 중 12번이나 이 비상선을 이용하면서 무의식중에 「미·소 협조체제」를 만들고 있었다. 개전 초 「이스라엘」군의 「즉각 철군」을 주장하던 소련이 궁지에 몰린 「나세르」를 구출하기 위해서 인지 밤새도록 공산당 최고간부회의를 열고는 이튿날 「코시긴」이 이 「홋·라인」을 통해 무조건 휴전에 동의한다고 「존슨」에게 얘기했다. 또한 미 함 「리버러」호가 「이스라엘」기에 오폭을 당해 사망 31명, 부상 71명의 불상사가 나자 미군기 10대가 구조차를 출격했을 때도 「전쟁개입」이란 오해를 받지 않도록 「존슨」은 이 비상선으로 「코시긴」에 해명했다. 이러한 사실은 미·소간의 긴밀한 협조를 이룩한 역사적인 실례로 길이 남을 것이다.
「드골」「프랑스」대통령도 「녹색전화」를 통해 「코시긴」과 긴밀한 연락을 했었다. 「쿠바」위기 이래 생긴 미·소 핵 거인의 「대결기피증」이 결국 중동 전을 사상 최단 시일의 전쟁으로 끝맺게 한 셈이다.

<양국에 눌린 「유엔」>
세 차례의 「유엔」휴전결의로 총성은 멈추었을지라도 「유엔」은 또다시 미·소에 짓눌려 「무력성」을 드러냈다.
「이집트」는 소련과 「프랑스」로부터 중대「메시지」를 받은 후 「유엔」의 즉각 휴전을 수락했다는 내용이 9일 「나세르」의 하야성명에 포함됐다는 사실은 이를 잘 설명해준다. 이러한 미·소 협조를 성급하게도 과대 평가하는 자들도 있으나 이는 단지 핵 거인의 대결을 모면해야된다는 대 명제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다. 「아랍」권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위한 소련의 값비싼 노력, 「아랍」제국을 형성하려던 「나세르」의 「비스마르크」식 꿈, 그리고 미국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식 중동정책은 이제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적의에 찬 「아랍」권속에 파묻힌 조국을 구제한 것이 바로 군사력이라고 믿기 때문에 승자인 「이스라엘」도 항상 위협을 받게 됐다. 전쟁은 끝났으나 미·소는 각각 새로운 출발점에 서있다.

<직접 협상을 주장>
미국은 「이스라엘」의 승전을 십분 이용하여 「아랍」내부에 깊숙이 침투하고 소련에 색다른 흥정거리(월남전)를 제시할지 모른다. 최소한 「예루살렘」과 「가자」지구를 전리품으로 확보하려는 「이스라엘」의 요구와 50년 「아이젠하워」대통령의 국경선 보장선언 및 13일 「존슨」의 「중동국가들의 영토권 보존」성명은 분명히 서로 배리 되나 승자와 패자의 직접 협상을 주장하는 고자세의 「이스라엘」요구에 관망하는 미국의 태도와 소련의 「유엔」특별총회 소집요구에 냉담한 것은 이 때문인 것 같다. 9억5천만 불(52년∼64년)의 원조를 받고 소맥 소비량의 6할이 미 잉여 농산물이었던 「이집트」에 대해 미국은 「중동판 마샬플랜」을 선심 쓰듯 내놓았다. 패전으로 표면상으로 뭉친 것 같으나 실제론 조각난 「아랍」권에 미국은 경원이란 고전적이고 공식적인 방식을 적용, 완전한 「아랍」권 붕괴를 꾀한 것으로 보인다.

<소 손해는 20억불>
「존슨」대통령은 벌써 국가안보위에 특별위원회를 상설, 「포드」재단 이사장 「맥조지·번디」씨를 불러들여 사무장에 앉히고 장기전략을 짜고 있다. 한편 소련은 『약속을 해놓고 막상 이행할 때가 오니 뺑소니 쳤다』는 한 「아랍」신문의 대소 비난기사에서 엿볼 수 있듯이 「나세르」를 배신한 오해 때문에 「딜레머」에 빠졌다. 「아랍」의 특사 「부메디엔」 「알제리」 대통령에게 「이스라엘」의 전전 원상복귀를 위한 그의 노력을 확약함으로써 일단 「아랍」권을 무마시켰으나 소련으로서는 20억불이 넘는 군원이 헛된 것임을 실감하게 되었으며 「나세르」에 대해 지원이기보다 압력을 가해야했기에 앞으로 소련은 중동정책의 재검토가 불가피하게 됐다.

<동구 반발은 필지>
새로운 정책은 중동의 전략적 위치 확보라는 선에서 결정될 것 같은데 이렇게 되면 중공·「쿠바」는 물론 동구로부터 필연코 반발을 받을 것이다. 하여튼 물질적 원조능력은 없으나 중공이 정치적·심리적으로 불로소득을 얻게될 것이며 중공은 「아랍」권내 세력 부식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과의 단교란 「모스크바」에서의 7개국 공산지도자 회의 후에 나온 강경 노선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과거와 같은 「아랍」권의 보호국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미국의 중앙조약기구가 무력화한 꼴을 보아온 소련은 「이집트」「시리아」등 「아랍」권에의 군·경원과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증할 것이나 미국보다 더 큰 고민을 안고 출발하게 됐다. 중동 최강국(터키 제외)이 된 「이스라엘」 때문에 미·소·불·중공 등 강대국들은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를 놓고 새로운 중동 침투전을 벌이고 있다. <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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