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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에 미국서 돌아온, 고 김규식 박사 부인 김순애 할머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상해 임시정부의 부주석이었으며 6·25때 납북 당한 항일투사 고 김규식 박사의 부인 김순애 여사가 1960년 미국에 건너간지 7년 만인 지난 9일 다시 고국에 돌아왔다.
20년 동안 미국에 살고있는 딸 포린김 박사 부부(부군 장성진 박사·예일대 교수)와 함께 귀국한 김 할머니는 『조국에 내 뼈가 묻히고 싶어 왔다』고 한다.
79세의 고령이지만 주름살 하나 없는 고운 피부와 건강한 모습.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아 허리가 불편하다 면서도 의자에 꼿꼿이 앉은 채 장기인 뜨개질을 하고 있다.
망명가족으로 중국 남경에서 살아온 김여사는 3·1운동이 일어나던 해 김박사와 결혼, 슬하에 3남매를 두었다. 장남 진동씨는 일본에 있고 서울에는 둘째아들 진세씨(미륭상사) 가족이 산다.
『이렇게 나이 들어도 잊히지 않는 것은 김 박사가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대표로 떠나자 그것을 보고하기 위해 한국에 밀파되었던 일』이라면서 『그때 33인 대표를 만나고 나도 3·1운동에 가담하려하자 「파리」에 있는 대표와 조국을 위해서는 살아남아야 한다고 만류해서 2월27일 태극기를 들고 중국으로 나왔다』고 말하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김여사는 미국에 있는 동안 한국인이 국제결혼을 할까봐 처녀 총각을 위한 「파티」를 자주 열었다고 했다. 『내가 미국에 눌러있으면 그럭저럭 일거리가 생기지만 이곳에서는 안방만 차지하고 있는 늙은이 꼴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김 할머니는 그게 싫다고 한다. 쉴새없이 일하는 게 가장 즐겁다는 것이다. 밤잠도 겨우 4시간, 그 외 시간은 기도로 날을 밝힌다.
앞으로의 소망을 묻자 『그건 아무도 몰라』하면서 감추듯 손을 가슴에 포개어 버린다.
『나머지 나의 생활은 오직 하루하루를 거리낌없이 살아가는 것뿐이다』고 김여사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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