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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덴소배서 창하오에 불계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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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덴소배 결승전에 나선 이창호9단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전략가의 모습 그대로였다. 단판 승부이기에 그만큼 변수가 많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9단은 초반 실리에서 앞선 뒤 상대에게 단 한번도 기회를 주지 않는 완벽한 모습으로 우려를 씻어줬다.

이9단은 빈틈없는 형세판단을 바탕으로 시종 주도권을 잡았고, 창하오(常昊)9단이 시도한 최후의 공격도 무산시키며 완승했다.

창하오9단은 지난 수년간 '중국의 이창호'로 불리며 중국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아온 강자였으나 주요 대회에서 이9단에게 4승18패로 가로막혀 아직까지 한번도 우승을 해보지 못했다.

이번 대국에서도 창하오9단은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된 듯 전략이 크게 흔들렸다. 그는 중앙을 건설하다 실리로 돌아서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자신의 특기인 '전투력'과 '수읽기'를 제대로 꺼내들지도 못한 채 무너졌다. 정신력에서 이날의 창하오는 이창호9단의 상대가 아니었다.

이9단의 승리로 2003년에 접어들며 더욱 불붙기 시작한 '한.중 바둑대전(大戰)'에서 한국은 잇따라 3연승을 거뒀다. 이달 초 삼성화재배 세계오픈 결승전에서 조훈현9단이 중국의 왕레이(王磊)8단을 꺾었고, 곧바로 열린 국가대항전인 농심신라면배에서도 이창호9단이 중국의 스타 후야오위(胡耀宇)7단 등을 연파하며 우승컵을 선사했으며 이번에 또다시 일본이 주최한 대회에서 이9단이 승리한 것이다.

더구나 이 세 대회가 모두 한국이 아닌 중국과 일본에서 벌어진 대회였기에 한국바둑의 강세는 더욱 돋보인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이 무색하게 한국바둑은 조훈현-이창호 두 사제가 선두에서 종횡무진하며 10년 넘게 세계를 제패해 왔다. 이제 세계 바둑팬들의 시선은 한국바둑의 질주가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까에 집중되고 있다.

<하이라이트>=초반 전투는 팽팽했다. 그러나 귀를 살리지 않은 창하오의 백1이 대완착. 이창호9단의 흑2가 의표를 찌른 호착으로 귀를 잡으며 하변마저 지켜 실리에서 앞서게 됐다.

그러나 창하오가 진짜 흔들리게 된 동기는 흑 6, 8의 젖혀잇기를 거꾸로 당한 탓이라는 게 유창혁9단의 진단이다. 이 '4집'의 손해 때문에 창하오는 계속 실리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고, 그 바람에 중앙에 주력해야 할 시점에서 23으로 실리를 취하는 전략상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총보는 한국기원 홈페이지(www.baduk.or.kr)에 실려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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