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책과 지식] 역시 이중톈 … 이 난세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중국 사상은 실용적이다. 추상과 관념 대신 지혜와 해법에 무게를 싣는다. 혼돈과 격변의 시기를 헤쳐나가는 데 훌륭한 동반자가 된다. 스타작가 이중톈 등이 추려 뽑은 중국고전의 알갱이를 만나본다.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2010)’의 한 장면.

이중톈, 정치를 말하다
이중톈 지음
유소영 옮김, 중앙북스
372쪽, 2만 원

“내가 전통을 연구하는 목적은 전통에서 쓰레기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쓰레기를 찾아낸 뒤 그것을 철저히 없애야 한다.”

 20세기 중국의 사상가 후스(胡適·1891~1962)의 말은 신랄하다 못해 자학에 가깝다. 불과 한 두 세대 이전 중국 지식인들에게 전통이란 그토록 미덥지 못했고, 또 싫었다.

 아편전쟁 이후 서양의 반(半)식민지로 전락했던 19~20세기의 아픔이 그만큼 컸다. 신간 『이중톈, 정치를 말하다』는 콤플렉스 많던 앞세대와 달리 내다버린 쓰레기통에서 보석을 발견해내려는 살뜰한 노력의 일환이다. 현대화에 성공한 중국이 전통을 보는 눈이 그만큼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제목만 보면 현실정치를 다룬 듯하지만, 실은 고전 강의이다. 즉 춘추전국시대를 꽃 피운 유가· 묵자·도가·법가 등 제자백가(諸子百家), 그 중에서도 정치철학을 다뤘다. 흥미로운 건 저자 이중톈(66·샤먼대 교수)이란 인물. 그는 도올 김용옥과 이어령을 합친 듯하다. 박람강기(博覽强記)에 인문학을 넘나드는 역량 때문에 르네상스적 인간으로 통한다. 인세 수입도 대단해 ‘포브스’ 선정 중국 갑부 47위에 올랐다는데, 신간은 연초 출간됐던 『이중톈, 사람을 말하다』와 자매편이다.

 이 책의 질문은 다소 묵직하다. ‘누가 세상을 다스릴 것인가’ ‘어떻게 세상을 구할까’, 즉 고대사상가들의 치국책(治國策)이 초점이다. 난세에 옛 지식인들은 어떤 사회를 꿈꿨으며, 그 노하우를 지금 어떻게 적용할까를 짚어본다. 국내외적으로 격변에 빠져있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매우 구체적이다.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는 사회적 위기에 직면했지만 그들은 황급하게 물 한 동이를 들고 뛰어다니지 않았다. 그들은 차분하게 생각했다. ‘왜 불길이 치솟았고, 어떻게 화마의 근원을 없앨 수 있는가?‘”(머리말)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기 전 사상가들의 치열한 고민은 지금과 닮은꼴이다. 그들은 자기 나름의 솔루션을 만들어 권력자들에게 제시했다. 물론 퇴짜 맞기 일쑤였다. 그런 공자의 모습을 두고 사마천은 “풀 죽은 모습이 마치 상갓집 개와 같았다”고 묘사(『사기』의 ‘공자세가’)했을 정도다.

 역설이다. 현실정치 앞에서 그토록 무력했던 그들의 사상은 훗날 중국을 떠받치는 정치철학으로 부활했다. 단 약간 온도차가 있다.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君君臣臣)”의 처방전을 들고 나왔던 공자의 유가와, 법과 질서를 내세운 한비자의 법가는 정치철학의 집권 여당으로 올라섰다.

 명분과 세(勢)에서 밀렸던 노자 장자의 도가철학은 집권당을 견제하는 야당 역할을 지금껏 해오고 있다. 평등과 박애(博愛)를 외쳤고, 그래서 “중국 역사상 최초로 풀뿌리 민중을 위해 입을 열었던”(60쪽) 묵자의 위상은 어떻게 정리될까. 그들은 중국 정치철학의 지하정당인 셈이다.

 때문에 어짊과 정의(유가), 법과 질서(법가), 자유와 관용(도가), 평등과 사랑(묵가)이야말로 중국 정치철학의 핵심이다. 자부심 넘치고, 유머감각을 발휘해 전통을 말하던 저자가 책 뒷부분에서 곤혹스러운 빛이 역력하다. 이어지는 다음의 질문 때문이다.

 없는 게 없다는 정치철학의 땅에서 왜 민주주의는 탄생치 않았을까. 사람을 근본으로 한다는 민본(民本)은 왜 허울뿐인 장식으로 끝났을까. 자유와 관용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왜 휴머니즘은 등장치 않았을까. 왜 중국인은 진정 독립적인 개인 혹은 시민과 달리 인권 없는 신민(臣民)으로 남았나.

 이중톈이 중국의 이런 한계 앞에서는 겸손해진다. 그래서 과도한 중화주의 혹은 민족주의의 흔적은 별로 없다는 게 이 책의 미덕이다. 그럼 우리시대의 정치철학을 찾기 위한 제3의 방법은 무엇일까. 그런 질문이 책에 무게감을 더한다. 이중텐의 처방은 ‘두 개의 노’를 함께 젓자는 제안이다. 즉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함께 보고, 새로운 균형을 잡자는 것이다.

 그건 사상가 후스의 앞 세대가 입을 모았고, 개항기 이래 우리도 말했던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지혜이다. 우리 것을 뼈대 삼아 서양을 활용하자는 뜻인데, 차원 낮은 정치공학을 넘어선 인문학적 정치론다운 지혜가 없지 않다. 책 전체를 질의 응답식으로 서술한 것도 대중교양서다운 친절한 장치로 보인다. 역시 이중톈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