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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43) 새마을운동 오해와 진실 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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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오는 번거로움이 없도록 농촌에 수도 시설을 만드는 일도 새마을사업의 하나였다. 1974년 수도가 새로 들어선 경기도 안성의 한 농가. [중앙포토]

새마을운동을 둘러싼 오해가 많다. 지난 회에 이어 그 진실에 대해 적어본다. 문답 형식을 빌렸다.

 - 10월 유신을 뒷받침하기 위한 운동 아니었나.

 “10월 유신이 있기 2~3년 전에 새마을 가꾸기 운동(새마을운동의 전신)이 시작됐다.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없다. 그러나 한 시대에 오버랩(overlap·하나의 장면이 끝나기 전 다른 장면에 겹쳐 떠오르는 방식)되는 일이긴 하다. 새마을운동이 농민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유신시대의 국정 지지도가 올라가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 새마을운동이 일본 신촌(新村·아타라시이무라)운동의 복사판이라는 역사적 비판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일본의 신촌운동, ‘아타라시이무라 스쿠리 운도(新村作り運動·새마을 만들기 운동)’의 의미는 다르다. 우리의 읍면동처럼 일본엔 기초지방자치단체 단위로 시정촌(市町村)이 있다. 일본의 시정촌은 소규모 단위로 수천 개에 이른다. 영세한 시정촌 단위로 도서관, 공회당 등 공공복지시설을 만들려고 하니 비경제적이었다. 그래서 일본에선 수십 년에 걸쳐 시정촌 합병을 추진해왔다. 그걸 아타라시이무라 스쿠리 운도라고 했다. 새마을은 순수 우리 말이다. 신작로 옆에 새로 만들어졌거나 깨끗이 정비된 마을을 ‘새말’이라고 불렀다. 우리의 새마을운동은 일본의 신촌운동과 어원도, 내용도 다르다.”

 - 새마을운동으로 농촌이 잘살게 됐다는데 왜 사람들은 농촌을 떠났나.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은 농촌 개발을 위한 특별 대책이 없었다면 수출 경제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도농 격차는 더 커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 발전과 새마을운동의 성과는 상호보완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 또 산업화·도시화 과정에서 농촌 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세계 공통적인 현상이다.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의 농촌 인구 비중은 한국보다 적다. 농촌이 빈곤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를 두고 논란이 있다. 원조는 어디인가.

 “원조는 한 곳이 아니다. 1970~71년 월례 경제동향보고회에 성공 사례로 여러 마을이 보고됐다. 새마을운동의 전신인 새마을 가꾸기의 원조가 그렇다는 얘기다. 새마을 가꾸기 운동 2년차 때 전해의 절반 규모인 1만6600여 개 마을에만 시멘트와 철근을 지원했다. 성과가 좋지 않은 마을엔 지원을 하지 않았다. 지원 대상에서 빠진 마을 가운데 6000곳이 새마을 가꾸기 운동에 자진해서 뛰어들었다. 정부 지원 없이 스스로 마을 공동사업을 시작했다. 새마을 가꾸기 운동이 새마을운동으로 진화하게 된 계기다. 굳이 새마을운동의 원조를 따지자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그 6000개 마을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새마을운동본부에서 많은 비리가 발생하기도 했다.

 “1970년대와 80년대 새마을운동을 명확히 분리해서 봐야 한다. 70년대 새마을운동에서 마을에 있는 새마을지도자 이외의 다른 조직은 의도적으로 기피했었다. 거대한 중앙 조직이 만들어져 이권화·관료화되는 것을 철저히 막았다. 조직이라고 하면 새마을지도자 협의회밖에 없었다. 그런데 80년대 5공화국이 들어서며 새마을운동본부가 생겼다. 본부가 생기면서 새마을운동은 변질됐다. 당시 김포가도를 차로 가다가 ‘새마을 헤드쿼터’란 간판을 봤다. 새마을운동에 헤드쿼터가 어디 있나. 외국인이 봤다면 군대 조직인 줄 알았을 거다. 그때 ‘새마을의 종언이구나’라고 생각했다.

 - 개발도상국에 대한 새마을운동 전파, 잘 되고 있는 건가.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KOICA), 새마을운동중앙회, 경상북도 등이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지에 새마을운동을 전수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근 지역에 나가면서도 서로 협력하기보다는 각개 약진하고 있다. 새마을 정신이 근면·자조·협동이다. 외국에 나가서 새마을운동을 하는데 협동이 안 되고 있다. 또 새마을운동의 핵심은 동기 유발과 자조 협동의 과정이다. 중요한 부분은 빠지고 건설회사 시켜서 다리를 놔주고 회관을 지어주는 해외 원조 사업으로 변질되고 있다. 고기를 잡는 방법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생선을 사서 주고 있는 셈이다. 아쉬운 부분이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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