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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장 경사 뺨치는 10번홀, 등산하는 기분의 18번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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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텔레비전은 모든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 때론 일부러 보여주지 않는다. 마스터스를 개최하며 골퍼들에게 ‘깃발 꽂힌 천국’이라는 별명을 얻은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도 마찬가지다. 융단 같은 잔디와 높이 솟은 조지아 소나무는 아름답지만 환상도 감추고 있다.

 11일 오후 9시(한국시간)에 개막한 제77회 마스터스가 열리는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내셔널 골프클럽의 감춰진 모습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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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 화면은 사물을 평탄하게 보이게 한다. 10번 홀(파4)은 스키장으로 치면 중상급자용처럼 가파른 내리막이다. 클럽하우스가 산 정상에 있고, 1번과 10번 홀이 급한 내리막인 한국 골프장과 매우 흡사하다. 반대로 18번 홀(파4)은 엄청난 오르막이다. 텔레비전에서도 오르막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가보면 등산하는 느낌이 난다. 최경주(43·SK텔레콤)의 캐디였던 앤디 프로저(61)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10층 건물에 올라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1번 홀의 티샷과 마주보는 9번 홀(파4)의 두 번째 샷은 계곡을 넘겨 친다. 양탄자 같은 잔디로 메워놔서 경사가 심한 것 같지 않지만 심하다. 이곳에 개울이 있었다. 이 계곡의 경사가 얼마나 급한가 하면, 지난해 9번 홀 페어웨이에서 두 번째 샷을 한 배상문은 “피칭 웨지를 쳤는데 내리막 라이라 공이 뜨지 않고 총알처럼 날아가더라”고 했다.

 TV는 그린의 경사도 제대로 못 보여준다. 마스터스 그린이 빠르긴 하지만 ‘살짝 건드려도 5m 굴러가는’ 퍼트는 평지에서 한 게 아니다. 이런 건 확연한 내리막이다. 2005년 우즈가 우승할 때 16번 홀(파3)에서 90도 꺾이는 칩샷이 신비롭게 보였다. 그린 주위에서 보면 덜 신비로웠을 것이다. 그린 아랫단과 윗단의 경사가 확연하다. 넣을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이긴 해도 우즈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게 칠 수밖에 없다. 4라운드 16번 홀에서는 핀이 아랫단에 꽂히는데 선수들은 아랫단과 윗단의 경계에 공이 떨어지게 해 굴러 내려오게 한다.

 텔레비전이 일부러 보여주지 않는 곳도 있다. 아멘코너의 심장이라 불리는 13번 홀(파5) 티잉그라운드의 뒤다.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는 호건의 다리와 넬슨의 다리 건너 깊숙한 곳에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오지 못하기 때문에 선수들의 노상 화장실로 이용된다. 최경주는 “2010년 우즈와 4라운드 내내 칠 때 함께 볼일을 본 적도 있다”면서 “냄새가 ‘징한’ 곳”이라고 말했다.

 자세히 보면 13번 홀 티박스 뒤편에 또 다른 골프장이 있다. 이름은 오거스타 골프장이다. 신성한 마스터스 대회 기간 중에도 바로 뒤 오거스타 골프장에서는 열심히 골프를 친다. 대회 관계자 등 VIP들이다. 동네 사람들은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보다 더 아름답다는 말을 한다.

오거스타=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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