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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쫓는 대작가 서울 온 「모라비아」씨 회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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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탈리아」가 낳은 국제적 작가 「알베르토·모라비아」(30세)씨가 부인(30세)과 함께 내한, 「조선호텔」 「코피·숍」에서 기자 회견을 가졌다. 깊숙이 빛나는 작은 눈, 엄하게 다문 입, 은회색 머리. 「파시즘」을 날카롭게 비판한 작품 때문에 한때 작가 활동을 금지 당했던 「반골」기질이 전신에서 풍긴다. 도시 사교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먼 차가운 표정. 「이탈리아」어의 「액센트」가 섞인 유창한 영어로 그는 말문을 열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사진처럼 묘사하는 것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요, 사물의 내면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큰 문제이지요. 숨어 있는 의미를 내가 보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요.』 이런 뜻에서 그는 자신이 「리얼리즘」 보다 오히려 「표현주의」에 가깝다고 했다. 「도스프엡스키」·「랭보」·「조이스」의 문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특히 실존주의 철학은 그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그는 말했다.
『29년대의 나의 작품은 실존주의의 영향 밑에 쓰여졌소. 오늘날에도 실존주의는 가장 중대한 사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실존 철학의 한계성이 드러나고 있는 게 사실이나 이를 완전히 넘어서는 대치할 철학은 아직 없다고 한다. 그는 「후설」의 현상학 「하이데거」의 존재론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철학에 대한 그의 해박한 전문 지식에 속으로 은근히 감탄을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부인이 말참견을 했다. 『이 분은 학교라곤 국민학교 밖에 안 다녔어요. 순전히 독학이지요.』 부인의 자랑에 그는 멋적은 듯 웃었다.
전쟁의 시대가 다시 시작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보는가고 물으니, 한마디로 『말 할 수 없소.』 「러셀」경의 월남전 전범 재판에 대해서도 「노·코멘트」. 할 말이 많이 있을 듯 한데 그는 끝내 정치 문제에 입을 열지 않는다.
서구 문명의 위기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너무 큰 문제라서 신문에는 말 할 수 없소. 신문은 항상 수박 겉만 핥으니…. 이런 문제는 책을 한 권 쓰면서나 다룰 수 있는 문제요.』 그에게는 신문쯤은 안중에도 없는 듯 하다. 작가가 된 동기는 『좋아서』, 자기 작품 중에 특히 좋은 것은 『없소.』. 앞으로 계획은 특별한 건 없고, 요즈음에는 소설보다 희곡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 마디.
돌아가면 한국에 대해서 작품을 쓰겠는가는 물음에 「스탕달」은 20년을 살고 나서야 「이탈리아」 이야기를 작품으로 썼다면서 웃는다. 그의 소설을 영화로 한 「두 여인」이 참 좋았다고 하니 기뻐한다. 『좋은 영화지요. 「소피아·로렌」의 연기는 정말 훌륭했지요. 』 대작가도 「소피아」의 「팬」인가 보다. <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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