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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김진의 시시각각

압력이 높으면 평양이 터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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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면 누가 더 위험할까. 남한인가 북한인가. 정권은 보일러와 같다. 남한 보일러는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력으로 튼튼하다. 한·미 동맹이라는 안전장치도 있다. 그래서 쉽게 터지지 않는다. 반면 북한 정권 보일러는 낡고 허술하다. 압력을 견뎌내는 힘이 남한 절반도 안 된다. 압력이 올라가면 평양이 터져버릴 수 있다.

 남한 국민은 한반도 긴장 고조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압력이 올라가면 오히려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으로 남한을 ‘최종 파괴(final destruction)’하겠다고 협박했다. 하지만 정작 그 전에 북한이 ‘최종 해결(final solution)’될 수 있다. 호언하고 장담하는 세력일수록 내부 압력에 약하다.

김일성은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핵 도발을 시작한 것이다. 미국 클린턴과 남한 김영삼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나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쪽은 김일성이다. 81세 김일성은 하루 10여 시간씩 일할 정도로 건강했다. 심장질환과 혹이 있었지만 심각한 건 아니었다. 그랬던 그가 핵 게임을 시작한 후 컨디션 이상에 시달렸다.

 특히 그에게 94년은 끔찍한 세월이었다. 6월 들어 클린턴 정권은 북한 핵 시설 폭격을 구체적으로 검토했다. YS 반대가 없었다면 폭격을 강행했을 수도 있었다. 결국 김일성은 남북정상회담이란 탈출구를 택했다. 그러나 회담을 17일 앞두고 그는 돌연 심장마비로 죽었다. 북한은 ‘김일성 장수연구소’를 만들 정도로 주석의 건강을 챙겼다. 핵 긴장이 없었다면 김일성은 90을 넘겼을지 모른다.

 김정일은 66세였던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서방 의술 덕분에 충실하게 회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정일은 2010년 큰일을 저질렀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이었다. 남한 정부는 대북지원을 완전히 끊었다. 남한 국민은 김정일을 규탄했다. 더 많은 젊은이가 북한 실체를 깨닫기 시작했다. 정권이 고립되면서 북한은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몰렸다. 김정일은 2011년 12월 17일 죽었다. 역시 심장마비였다. 부자가 똑같이 도발 이듬해에 같은 병으로 사망한 것이다.

 김정은은 올해 29세다. 병력(病歷)도 별로 없고 겉으로 보면 매우 건강하다. 그러니 긴장이 높아진다고 해서 그에게 건강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하지만 급변사태에는 지도자의 자연사(自然死)만 있는 게 아니다. 장기집권 권력에서는 보일러 압력이 높아지면 위해 세력이 등장한다.

 이집트 사다트는 1970년 대통령이 됐다. 그는 77년 이스라엘과 평화교섭을 시작했고 79년에 결실을 보았다. 반(反)이스라엘 이슬람교 원리주의 세력은 그의 목숨을 노렸다. 79년 이란에서 호메이니 이슬람 혁명이 성공했다. 이집트 내에서도 이슬람교 원리주의 압력이 높아졌다. 81년 10월 사다트는 군사 퍼레이드를 지켜보고 있었다. 대열에서 군인들이 뛰쳐나와 자동소총을 쏘아댔다. 사다트는 즉사했다. 집권 11년 만이었다.

 18년 권력자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가장 충성스러운 부하에게 피살됐다. 10·26이 가능했던 건 정권 보일러의 압력 때문이었다. 당시 부산과 마산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터졌다. 그런 압력 상승이 없었다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권력자 살해를 결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장기집권 권력에는 어딘가에 ‘마탄(魔彈)’이 장전돼 있다. 압력이 높아지면 총알은 나간다.

 어떤 경호 장벽도 총탄을 막을 수는 없다. 총탄 발사를 막으려면 보일러 압력을 낮춰야 한다. 더욱 안전한 건 보일러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김정은은 핵 대신 인민을 선택하고, 인민을 먹이고, 공화국의 미래를 위해 남한을 경청해야 한다. 그런 보일러만이 압력을 견딜 수 있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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