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아들이 술 마신 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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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호 30면

반주는 마음의 스트레칭이다. 저녁식사 때 곁들이는 한두 잔의 술은 종일 긴장과 스트레스로 딱딱하게 뭉친 마음의 근육을 느슨하게 풀어준다. 반주를 즐기는 사람은 칭찬에 인색하지 않다. 이미 마음의 잔 근육들이 이완되어 한껏 너그러워졌기 때문이다. 퇴근 후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우선 반주로 소주 한 잔을 삼킨다. 옆에서 보던 아들이 얼굴을 찡그린다. “아빠, 소주 안 써요? 난 못 마시겠던데.” 이제 막 젓가락을 들고 아내가 무친 봄나물 칭찬부터 늘어놓으려던 나는 아들을 보고 흐뭇하게 웃는다.

아들아, 옛날 남산에 ‘위’라는 술집이 있었어. 물론 그 술집에서 좀 내려오면 ‘아래’라는 술집도 있었겠지. 옛날에는 술집 벽에 낙서가 많았단다. 왜 요즘 너희들도 트위터니 페이스북이니 하면서 담벼락에 뭔가를 쓰지 않니? 술자리에서 말이야.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었으니 술 마시다 딴짓을 하고 싶을 때면 벽에 낙서를 했어. 예를 들면 이런 낙서들이 있었어. “1983년 이정진 다녀가다.” “이현성+김순옥, 사랑은 영원히.” 명언 같은 것도 있었다. 니체의 말이었을 거야.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아온의 하이쿠도 있었다. “날이 밝으면 / 반딧불이도 고작/ 한 마리 벌레” 구호도 있었어. “민주주의 만세!”

아들아, 요즘 너희들이 하는 SNS처럼 술집 벽의 낙서에도 댓글이 달렸단다. 가령, 하이쿠 밑에는 이런 댓글이 붙었다. “벌레지만 또 / 밤이 오면 눈부신 / 반딧불이지” 누군가 “인생은 짧다. 그러나 예술은 길다”라고 써놓은 낙서 밑에 다른 누군가가 “흥취는 짧다. 그러나 숙취는 길다”라고 쓴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야. 그렇게 낙서들은 서로 연루되어 있었어. 아들아, 그런데 아빠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거지? 그래, 이 소주가 쓰다고 했지.

아들아, 그 술집 벽에 이런 낙서가 있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술이 달까?” 그 아래 누군가 댓글을 이렇게 달아놓았어. “그것은 그대 인생이 쓰기 때문에 그런 줄 아오.” 인생의 맛과 술맛은 반비례한다는 거지. 그러니까 아들, 네 인생이 달콤하기 때문에 소주 맛이 쓴 거란다. 아빠는 이 소주가 달다. 참 달다.

반주를 포함한 음주의 단점 중 하나는 술 마신 이의 신경이나 감각이 둔해져 눈치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아까부터 아내와 아들은 내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있다. 아들은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는 중이고 아내는 식사를 끝내고 거실에서 책을 뒤적인다. 나는 소주를 물끄러미 본다. 오직 소주만이 변함없이 내 곁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 말 없는 위로와 격려를 보내준다. 이러니 소주가 어찌 달지 않겠는가.

하루는 아들이 늦게 들어왔다. 술을 마신 눈치다. 아들 녀석은 기분이 좋은지 평소와 달리 수다스럽다. “아빠, 나 오늘 해오름식 끝나고 술 마셨는데 술이 달던데요. 요즘 학생들 인생도 쓰니까요. 등록금은 비싸고, 알바도 힘들고, 학점은 짜고, 취업은 잘 안 되고.”

나는 아들이 대견하다. “그래, 이제야 너도 제법 술맛을 아는구나.” 나보다 더 키가 큰 아들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 꼴을 한심하다는 듯 아내가 바라본다. “아들이나 아버지나. 너 무슨 술 마셨니?” “동동주요.” 아들아, 그 술은 원래 달콤한 술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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