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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말기 구치소 줄면회 다닐 줄이야 … 정치는 어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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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은 “정치는 화평한 사회를 위한 것이니, 내가 6을 가지려면 상대에게 4를 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정치인들이 ‘통치’와 ‘정치’를 구분하게 되는 게 새 정치”라고 강조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첫출발은 쉽지 않네요.”

새누리당 조해진(50·경남 밀양·창녕) 의원은 소위 ‘MB(이명박)맨’이다. 그런 그가 박근혜정부에서 큰 산 하나를 넘었다. 국회 문방위 여당 측 간사로서 막판 쟁점이었던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이슈를 해결 짓고 50일 넘게 끌어온 정부조직법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처가 컸다. 청와대엔 ‘불통’, 새누리당엔 ‘무능’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조 의원은 5년 전 이맘때 ‘광우병 촛불시위’를 떠올린다. 기억은 악몽 같지만 생생한 교훈이 됐다. 정권 초기 민심과 정부의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래서 또 걱정이 많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늘 한결같다”고 한다. 말씨가 조곤조곤하고 좀처럼 흥분하는 일이 없다. 어딜 가든 한 손엔 빨간 성경책을 들고 다닐 정도로 신심도 깊다. 그러면서도 소신 발언을 아끼지 않아 한 언론은 생방송 중 그를 ‘미스터 쓴소리’라고 소개했는데, 정작 본인은 “그렇다면 누군가 제 말에 상처를 입었을 것 같다”며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 MB계 의원이라 현 정부에 비판적인 건 아닌가.

 “하하. 친이지만 박근혜 대선캠프 대변인이었다. 야당하고 얼마나 설전을 많이 벌였는데…. 바른 소리라고 의식한 적은 없다. 그저 어떤 일을 바라봤을 때 드는 제 생각이다. 높은 분이라고 무조건 다 맞는 건 아니니까.”

 - 정부조직법 타결이 너무 어려웠다.

 “이제 정부가 국정운영을 원만하게 하려면 야당과 협의하고 절충을 해야 한다. 국회선진화법이 그렇게 돼 있다. 야당의 도움 없이는 국회에서 하나도 처리가 안 된다. 대통령과 청와대도 현안이 있을 때마다 여당뿐 아니라 야당을 미리 만나 부탁도 하고 설명도 하고, 그런 정치적 활동이 필요하다.”

 - 청와대가 불통이란 지적이 여전하다.

 “대통령은 중요 현안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국회 본회의장에 서야 한다. 시정연설을 할 때도 총리에게 대독하게 하지 말고 국회에 와서 직접 했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이 모욕적인 언사를 던진다 해도 손해 보는 게 아니다. 국민에게 존경을 받거나 최소한 동정심이라도 얻을 거다. TV를 통해 연설도 많이 하고 최대한 많이 보통 국민과 만나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우리의 고민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하다. 자신이 소통하고 있다고 주장하면 뭐하나. 상대방의 마음이 움직여야 진짜 소통 아닌가.”

MB, 광우병 촛불시위에 쇼크

 그는 2008년 처음 국회의원이 되기까지 이명박 서울시장 비서관, 이명박 대선 후보 공보특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부대변인 등을 지내 ‘친이 직계’로 불린다. 이 전 대통령이 퇴임하고 나서도 여러차례나 이 전 대통령의 사택에 초대돼 식사를 하곤 했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은 소통을 잘했나.

 “아쉽게도 국민적·대중적 소통은 성공하지 못했다. 다양한 계층의 국민과 최대한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시장에도 자주 가고…. 그러나 적어도 참모진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은 최고였다. 가식 없고 유머러스하고 진솔해서 우리도 편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안국포럼(이명박 대선캠프) 때는 대통령과 화장실에서 나란히 소변을 보면서 보고하기도 했다.”

 - MB 정부 평가가 좋지만은 않다.

 “잘 알고 있다. 결국 아직도 국민 마음속에 불만이 많고, 개인적인 좌절도 많고, 사는 게 만족스럽지 않다는 증거다. 그걸 누구한테 표출하겠나. 가장 힘 있는 대통령에게 욕을 하는 거다. 그나마 마지막 물러나는 순간에도 지지율이 한 자릿수가 아니라 30%였다는 게 대단한 거다.”

 - 초반부터 흔들렸던 것 같다.

 “광우병 촛불시위가 결정적이었다. 대통령이 임기 초반에 쇼크를 받으셨던 것 같다. 국민이 500만 표 차로 당선시켜 줬는데 취임 두 달 만에 거리로 몰려나와 물러나라니까…. 당시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하던 날 청와대 뒷산에 올랐더니 시위대들이 ‘아침이슬’ 노래를 부르는 게 들리더라’고 하시더라. 강철 같은 분인데 감성적인 말씀을 했다. 당시 책임을 물어 청와대 참모들을 다 내보냈는데, 국책 과제를 주도해야 할 사람들이 다 나가버려 국정운영에 더 어려움을 겪었다.”

 - MB 정부를 돌아본다면.

 “역사는 권력자의 기록이고, 정권이 넘어가면 비판을 받게 마련이다. 실제로 청년실업과 양극화가 심해졌다. 당초 7% 경제성장률을 이뤄 그 여력으로 분배를 하려고 했는데 글로벌 경제위기가 와서 버티는 것만으로도 어려웠다. 하지만 일을 참 많이 한 대통령이었다. 열정과 헌신, 노력도 컸다.”

어린 시절 너무 가난해 교회서 위안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이 매일 세 딸에게 쓰는 일기장. 육아일기로 시작해 이젠 습관이 됐다.

 조 의원의 소신과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지난해 새누리당 의원 147명은 국회 개원이 지연되자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일도 제대로 안 하면서 돈만 받는다’는 비판 여론에 고개를 숙인 거였다. 그러나 조 의원은 세비를 받겠다고 했다. “저는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게다가 한 달 세비로 제 가족과 어머니, 장인·장모님 생활비, 돌봐줄 친척 등 네 가족이 생활해야 하는데 십중팔구 돈을 꿔야 합니다. 그 돈을 못 갚고 계속 가면 부정한 일이니, 세비를 받는 대신 열심히 일하렵니다.” 반면 정치후원금은 원칙에 어긋나면 무조건 돌려보낸다. ▶지역구 단체장·기초의원 ▶출마가 예상되는 사람 ▶부탁을 들어주거나 도와줘야 하는 사람에게선 후원금을 받지 않는다. 자칫 대가성이란 의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국회의원이 돼도 풍족하지 않나 보다.

 “북아현동에 집이 한 채 있는데 국민은행 거다(웃음). 가난에 한이 있어서 병원비나 애들 학비 걱정은 안 해도 될 만큼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의원은 겸직도 안 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 수가 없다. 어머니는 일흔 넘어서까지 남의 비닐하우스에서 고추를 따고 일당을 받으셨다. 그걸 알고도 시집와준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

 조 의원은 요셉·모세·다윗·솔로몬 등 성경 속 지도자들을 존경해 정치인의 길을 택했다. 아내 송욱씨도 1991년 서울대 선교동아리에서 만났으니 종교가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셈이다. 송씨는 가야금 강사로 일하면서도 매주 남편의 지역구인 밀양에 내려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조 의원은 “옛날에도 예뻤지만 갈수록 더 예뻐진다”며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인터뷰 도중 울린 휴대전화 화면을 슬쩍 엿보니 ‘♥사랑하는 아내♥’라는 문구가 떠 있다.

 - 종교를 갖게 된 이유는.

 “가난 탓에 어린 시절이 너무 우울했다. 학교에서 불우이웃 돕기를 하면 전교생 대표로 나가 지원품을 받았다.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이 쌀 봉지를 들고 집에 오는 날이면 창피해서 도망가곤 했다. 그런데 시골 교회는 늘 밝고 평온했다. 연극이나 성가대도 즐거웠다. 성탄절·부활절·추수감사절 등 교회의 기억은 세월이 지나 생각해도 따뜻하다.”

 - 성경 속 정치인이 뭐가 특별했나.

 “참 좋은 정치를 했다. 나라를 화합시키고, 깨끗하고 정직한 풍토를 만들고, 지도자로서 희생하고 모범을 보였다. 그들의 공통점은 권력욕이 없었다는 거다. 오히려 리더가 되지 않으려고 도망 다녔다. 그걸 보고 이게 정치의 참길이고 지도자의 참덕목이라고 생각했다. 욕망을 비우고 선한 정치를 하면 국민도 마음을 바르게 갖는다.”

 - 실천하고 있나.

 “초선의원일 때는 자괴감이 있어도 몸싸움에 가담하고 궂은일에 몸을 던지기도 했다. 대통령을 직접 모신 입장에서 국책 과제를 실현하는 데 뒷짐을 져선 안 된다는 의무감이 컸다. 그 와중에 정치적 초심과 갈등이 많았다. 하지만 재선이 된 뒤엔 그 초심이 옳았고 얼마든지 실현 가능하다는 걸 느낀다.”

 - 어떤 초심.

 “상대방을 인정하는 거다. 저는 늘 ‘내가 6이면 상대를 4만큼은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야당도 존재의 이유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거다. 국회 문방위 간사로서 야당과 협상하면서 그 생각대로 하니까 공존의 정치가 가능하다는 걸 느낀다. 제로섬 정치를 하면 늘 긴장만 해야 한다. 저 말에 무슨 함정이 있을까, 무슨 배경이 있을까….”

 - 친이계 중엔 말로가 좋지 않은 경우도 많다.

 “제가 참여한 정권 말기에 이렇게 구치소를 순례하듯 줄면회 다니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안타깝고 참담한 생각도 든다. 다른 한편으론 이해가 안 된다. 대부분 정치권을 10~20년씩 지켜보면서 뭐가 문제가 되는지 다 아는 분들인데…. 정치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

 -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려면.

 “원칙과 소신 고수는 약자에겐 훌륭한 강점이다. 하지만 최고 강자에겐 자칫 독선과 고집으로 비칠 수 있다. 원칙과 소신을 유지하되 유연성과 개방성·현실성을 보완해 밝게 만들어야 한다. 또 하나, 나만 잘하면 국회는 당연히 따라오게 돼 있다는 생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국회엔 입법권과 예산권, 국정감시권이 있다. 대통령이 ‘정치를 잘한다’는 말에는 ‘국회가 잘 돌아간다’는 말이 포함되는 거다. 그런데 국회가 잘 돌아가려면 야당이 잘돼야 한다. 대통령과 여당이 성과를 독식한다면 야당은 어디서 존재 이유를 찾겠나. 결국 대통령을 표적 삼아 국민 불만의 대변자를 자처하며 사사건건 각을 세우게 돼 있다. 소통을 통해 야당을 동반자와 협력자로 만들어가야 한다.”

 -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대선 때 야당을 지지했던 48% 국민의 마음을 풀어줘야 한다. 필요하다면 야당에서도 인재를 뽑아 국정에 참여시킬 필요도 있다. 인사에는 큰 힘과 상징성이 있다.”

글=이소아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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