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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미주 이민 100주년] 10. '우리는 코리안 - 아메리칸'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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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미주 이민 한인 1백년사는 땀과 눈물로 얼룩진 고난의 역사였다. 하지만 한인들은 특유의 악착같음과 끈기, 근면함을 통해 미국 사회 속에서 확고한 발판을 마련했다.

그 기간에 태평양 건너 한국도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6.25 전쟁의 상처를 딛고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 이제 한국과 미 대륙의 한인들은 서로 도움을 주면서 함께 도약할 기회를 맞고 있다.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 한인회장 이봉현(45)씨는 요즘 무척 신이 난다.

동네 그로서리(가게)에 가면 종업원들이 "혹시 코리안 아니냐"면서 친한 척 한다는 것이다. 李씨는 "1972년 부모를 따라 이민온 뒤 93년부터 10년째 여기서 미용 재료상을 하고 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가을에는 초등학교 1학년인 李씨의 아들도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갑자기 코리아를 설명해줬다"면서 으쓱해 했다고 한다.

李씨가 사는 몽고메리시는 인구 20만명에 한인이 4백여명뿐이다. 더구나 이곳은 50~60년대에 미국을 휩쓸었던 흑백 갈등이 시작됐던 진원지다.

55년 버스에 탄 흑인 여성이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금을 물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백 차별 철폐 운동을 시작했던 바로 그 곳이다. 이런 역사 때문인지 이 지역에선 은연중에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분위기가 존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이후 한인에 대해서만큼은 백인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현대자동차가 연 30만대의 차량 생산을 목표로 이 지역에 1백90여만평의 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李씨는 "공장이 들어서면 일자리가 생기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는 걸 백인들도 금방 감을 잡더라"면서 "은행.건설업체.요식업체 쪽의 백인들이 찾아와 한인과 연계해 벌일 만한 사업을 문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때 전쟁과 가난, 고아 수출국으로만 알려져 있던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은 이처럼 미국에서 사는 한인들의 지위에도 덩달아 영향을 미치고 있다.

LA 한미연합회의 찰스 김 사무국장은 "피부색과 출신이 다른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 사회에서 한인은 좋으나 싫으나 '코리안 아메리칸'일 수밖에 없다"면서 "고국이 잘 돼야 미주 한인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 제품을 수입해 파는 한인들에게는 고국의 상황이 곧바로 사업과 직결되고 있다.

뉴저지주 세이빌의 의류 수입업자 A씨는 매년 1억달러어치의 옷을 한국에서 수입해 미국인들에게 판매해 왔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말 사무실 건물 바깥에 걸어놓았던 태극기를 슬그머니 거둬들여야 했다.

지역 방송에서 거의 매일 북한의 핵 문제와 한국의 촛불시위가 방영되자 거래 업체 몇 곳에서 "미국을 싫어하는 한국의 태극기를 성조기와 함께 걸어두면 손님들이 싫어한다"고 항의해 왔기 때문이다.

임필재 뉴욕 한인경제인협회 회장은 "일반 미국인들은 북한과 남한을 모두 같은 코리아라고 생각한다"면서 "북핵 개발이나 촛불시위 등이 계속 보도되면서 일부 백인 소매업자들이 한국 대신 중국으로 수입선을 바꾸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말했다.

한.미 간의 교역 규모가 증대하면서 미국에서도 한국말을 잘 하면 덕을 보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그에 따라 한글을 배우는 교포 2, 3세들의 숫자도 급속히 늘어났다.

주미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교회.한인단체 등에서 2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비정규 교육기관인 한글학교는 91년 5백56개였다. 하지만 10년 만인 2001년에는 1천11개로 두배가 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글학교의 교원수도 4천2백88명에서 8천6명으로, 학생수도 3만7천1백10명에서 5만6천9백13명으로 늘었다.

주미대사관 관계자는 "한글학교가 늘어나는 건 뿌리를 전해야 한다는 부모들의 교육관도 작용했지만 영어 외에 한국어도 가르쳐야 2세들이 나중에 한국과 관련된 일자리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현실적 이유도 한몫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여름 뉴저지 N신문에 입사하려다 실패한 한인 2세 B씨(29)의 경험은 교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대학 때 학보 기자도 했던 그는 당연히 합격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면접장에서 "다 좋은데 한국말을 못해 안되겠다"는 말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회사 측은 B씨에게 "단순히 백인을 취재할 기자를 뽑으려면 왜 한인 언론에 모집 광고를 냈겠느냐"면서 "우리는 영어와 한국어 모두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미국 내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들로이트 앤 투시(Deloitte and Touche)의 김인철 한국기업 본부장은 "80년대 들어 한국 지사들이 대거 미국에 만들어지면서 회계 분야에서도 한인 전문가들이 필요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도 89년 입사 당시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다는 게 큰 강점이 됐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경제성장이 한인교포들에게 예상치 못했던 기회를 주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한국도 미주 교포들로부터 적지 않은 도움을 받고 있다.

LA의 남가주대학(USC)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동해냐 일본해냐"의 논쟁이 벌어졌을 때 "동해가 맞다"면서 한국 편을 들어줬다.

이 대학 한국전통문화도서관(Korean Heritage Library)이 소장하고 있는 동아시아 고지도 1백80여점 가운데 1백30여점이 '일본해'가 아닌 '동해'로 표기돼 있다.

86년 세워진 이 도서관에 10만달러의 건립자금을 댄 건 한국 정부가 아니라 미국 정부였다.

이정현(49.여)관장은 "일본.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구가 소홀한 한국학을 부흥시키기 위해 한인교포들이 나서 미국 교육 당국에 한국 도서관 건립을 강력히 요청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창준 전 연방하원의원, 고 서재필 박사의 조카인 서동성 변호사 등 LA의 한인들도 후원회를 조직,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도서관에 기부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학의 장태한 교수는 "미국 내 유대계들은 미국의 중동 정책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한인 사회가 정치.경제적으로 성장하면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

몽고메리.뉴욕=신중돈.변선구.채병건 기자 <mfemc@joongang.co.kr>
사진=뉴욕 중앙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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