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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의인 김대업' 치켜세우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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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기자는 1994년 12월 기자생활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당했다. 27일엔 피고발인 조사도 받았다. 담당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젠 사건을 마무리해야 합니다."

고발인은 김대업씨였다. 지난해 8월 말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이 "구속 수감돼 있던 金씨가 여러 차례 SBS 골프닷컴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고 주장한 것을 기사화한 데 대해 "명백한 허위기사로 명예를 훼손했다"고 고발한 것이다.

진술조사서를 쓰다보니 그간 과정이 스쳤다. 金씨가 7월 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문제와 관련,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가 있었다" "병적기록표도 위.변조됐다"고 주장하면서 정국은 '병풍'으로 요동쳤다.

민주당은 대선기간 내내 이를 이용해 李후보를 '낡은 정치인''특권층'이라고 공격했다. 추미애 의원은 金씨를 "용감한 시민"이라고 했고, 박양수 의원은 "의인(義人)이며 강직하고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오마이 뉴스 등 일부 언론도 이에 동조했다.

의혹을 키워가던 검찰 수사는 10월 말 내부 진통 끝에 金씨의 주장 대부분이 사실이 아니라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하지만 金씨는 잠적한 뒤였다. 수사를 지휘한 서울지검 박영관 부장검사는 "(범죄)신고자인 金씨를 사법처리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했다.

지난 25일 金씨가 구속됐다. 사법적 판단이 남아있긴 하지만 金씨의 주장이 오히려 명예훼손이나 무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金씨가 펄쩍 뛴, 수감 중 인터넷을 사용했다는 부분도 검찰은 사실로 인정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지엽적인 문제다. 본질은 병역비리가 있었느냐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적어도 金씨를 의인으로까지 평가한 대목에 대해선 사과했어야 옳다.

일부 언론도 마찬가지다. 검찰도 지난 반년간 온 나라가 金씨의 입에 휘둘리도록 방치한 데 대한 반성과 보다 철저한 수사를 다짐해야 한다.

고정애 정치부 기자 <ockham@joongang.co.kr>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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