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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전자입찰 시스템 뚫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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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006년 지방에서 건설사를 운영하던 김모(56)씨는 양모(41)씨 등 평소 알고 지내던 프로그램 개발자들을 찾았다. 김씨는 양씨 등에게 “조달청의 ‘나라장터’ 시스템의 허점을 뚫어보자”고 제안했다. 조달청은 2002년부터 공공기관의 물자구매나 시설공사 계약 수주를 전자입찰 방식으로 진행하는 ‘나라장터’를 운영해 왔다. 김씨 등은 침투가 어려운 대형 서버 대신 비교적 관리가 허술한 지자체 공무원 PC와 경쟁 건설사들이 입찰에 쓰는 PC 등 양쪽에 악성코드를 심기로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겼다. 두 사람은 합심해 악성코드를 만든 뒤 다른 건설사 PC에 ‘입찰 참고자료’ 등 위장 e메일을 보내는 방식으로 이를 깔았다. 관공서에 직접 찾아가 USB나 CD 등을 몰래 PC에 넣어 악성코드를 심는 대담함도 보였다. 지자체의 대형 관급공사 입찰 때마다 악성코드는 담당 공무원도 알 수 없게끔 암호화된 낙찰 예정가격(예가) 15개의 액수와 순서를 정확히 훔쳐왔다. 공사에 응찰한 건설사들은 이 예가 중 2개를 보지 않고 무작위로 선택하도록 돼 있다. 여기서 가장 많이 선택받은 값 4개의 평균이 최종 낙찰 하한가로 정해진다. 입찰 비리를 막기 위해 복잡하게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하지만 건설사 PC에 뿌려진 악성코드는 미리 파악한 15개의 예가 중 2개를 골라 자동 선택되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악성코드를 통해 ‘로또보다 맞히기 어렵다’고 소문난 최종 낙찰 하한가를 파악해 냈다.

 2011년 6월 낙찰된 문경시의 한 하천 정비공사는 19억8000여만원에 낙찰됐다. 사전에 낙찰 하한가를 정확히 알고 있던 건설업자는 그보다 단 974원 높은 입찰가를 제시해 공사를 땄다. 불법 낙찰 성공률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김씨 등은 2006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경북 지역에서 총 31건, 290억원어치의 공사를 낙찰받는 데 성공했다. 코드 오류로 예측이 근소하게 빗나간 경우는 시도한 33건 중 단 한 번뿐이었다. 이들에게 낙찰을 의뢰한 건설사는 총 20여 곳. 작게는 2억원짜리에서 크게는 30억원대 대형 공사가 통상 200~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불법 낙찰 업체에 돌아갔다. 관련 지자체는 봉화, 문경, 의성 등 경북 전역에 걸쳐 있다. 김씨 등은 불법 낙찰 제안을 거절했다가 입찰에 떨어진 한 건설업자의 제보로 덜미를 잡혔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 김석재)는 범행에 가담한 악성 프로그램 개발자와 공사 브로커, 건설업자 등 25명을 적발해 이 중 10명을 구속하고 나머지는 불구속으로 재판에 넘겼다고 4일 밝혔다. 검찰은 올 상반기 경기, 강원, 호남, 충청권 발주공사에 대해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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